이거 드시며 하세요.
29 Apr 2005수명이 다한 전지를 꽉 깨물어 뾰족하게 자국을 남기면 마치 일말의 혼이라도 불태우는 듯 수명이 조금 연장된다. 죽을 힘을 다해 쥐어짜는 듯 하다. 콰악 깨물어 여드름 자국 마냥 흉터가 생긴 울퉁 불퉁한 전지가 노래를 부르는 듯 하다. DreamTheater의 Burning my soul.
철야를 하거나 야근을 한다. 그럼 직급이 있는 사람이 뭔가를 돌린다. 피곤하고 지쳤을 때 힘내라고 뭔가를 먹인다. 주로 박카스나 비타민 음료(비타 500같은 거), 까페라떼같은 커피가 그것이다. 사람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힘, 그러니까 동력원으로써 제대로 된 영양소를 갖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호 식품을 마시면 사람들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깨물린 전지 수준이라서 몇 시간 뒤 체력은 방전되고 만다.
나는 박카스를 마시면 멍해진다. 커피를 마시면 몽롱해지고 위가 쓰리다. 비타500같은 음료를 마시면 오줌이 샛노래지고 하루 종일 물을 그다지 마시지 않게 된다. 다른 이들에겐 생명 연장의 꿈, 아니 활동 시간 연장의 약물(?)이지만, 내겐 부작용이 훨씬 큰 약물이다. 그래서 힘내라며 주는 커피나 박카스, 비타민 음료는 체력 방전 촉진제다. 더욱에 날을 새면 미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이 매우 예민해지는데 이런 약물을 섭취하면 미처 몰랐던 세상의 소음과 악취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식사 후 박하 사탕이라도 집어 먹으면 혀와 내가 분리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체질에 맞는 피로 회복 먹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알갱이가 없는 부드러운 '아침에 주스'같은 오렌지 과즙 음료(Juice), 드레싱을 하지 않고 깨끗히 씻은 서늘한 채소(Salad), 그리고 따스한 홍차나 허브차면 충분하다. 그러나 커피나 박카스, 혹은 비타500에 비해 비용이 더 든다. 오렌즈 과즙 음료와 야채와 채소에서 영양소를 추출해서 만든 식이섬유 음료를 함께 마시면 될 거 같은데, 마셔보니 입맛만 버렸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가장 좋은 상황은 내가 피로 회복 먹거리를 찾거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는 피로 회복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을 원치 않는다. 피로하지 않게 일정한 규칙에 맞춰 생활하고, 머리 속에 쌓이는 정보를 거름과 똥으로 분류할 시간을 가지면 된다. 그런 상황이 녹녹치 않는게 문제이다. 이 문제는 돈을 많이 벌면 어느 정도 해결될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피로 회복 먹거리를 찾는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불쑥. 그, 혹은 그녀가 다가와 작은 병을 건낸다. 이미 저~~쪽에서 지었던 말과 미소도 함께 건낸다.
"이거 드시며 하세요.". 음... 저기 말이죠. 먹고 일하면 안될까요. 꼭 먹으며 일해야 하나요? 잠깐 꺼칠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