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함

죽는건가?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아플 때가 있다.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몸부림치게 아프다. 주로 새벽녁에 온 몸이 아퍼서 진땀 흘리며 몸부림친다. 관절 어느 부위를 지그시 잡고 잡아 당기면 비명도 안나오게 아프다. 그런 통증이 온 몸을 휘감아서 입에서는 단내만 난다. 그런 고통 속에서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맑고 깨끗하게 울린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 거 같다.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시 후 정신이 든다. TV를 보니 그 잠깐 정신을 잃는 동안 광고 몇 편이 지나갔고, 분명 일어서있던 난 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짧은 얼마간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기분이다. 그럴 때는 뭘 해야할지 모른다. 막연한 두려움이 몸을 휘감을 뿐이다. 나는 춥다고 느끼지만 등에서는 땀이 송글 송글하다. 그런 넋이 나간 상황에서도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맑고 깨끗하게 울린다.

마비될 때가 있다. 나는 앞을 보고 있고 냄새를 느끼고 있으며 약간의 소음을 듣고 있고, 머리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목 아래가 내가 하고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팔을 베게삼아 엎드려 잠들고 있다보면 팔에 피가 통하지 않아 마치 남의 팔인양 아무 감각이 없을 때가 있다. 굉장한 낯설음. 어깨 아래로 잘려나간 팔을 대신하여 뻑뻑한 나무 막대기를 꽂아놓은 듯한 기분. 그 기분이 온 몸을 휘감고 있을 때, 심장조차 빌려쓰는 기분이다. 배양액 속에 떠있는 두부 마냥 둥둥 떠다니며 뇌의 생명 활동을 보장해주는 그런 오감(五感) 속에서도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맑고 깨끗하게 울린다.

심장이 터질 듯할 때가 있다. 15km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 숨인지 침인지 구분이 안가는 호흡덩어리가 턱을 타고 흘러내릴 때도 아프지 않던 심장이 가만히 누워있거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발작을 일으킨다. 어떤 느낌이냐면, 내 겨드랑이쪽을 통해 누군가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양 옆에서 잡고 당겨서 앞뒤로는 납작해지고 옆으로는 늘어나서 심장을 중량급 권투 선수가 강렬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잽 공격처럼 날리는 느낌이다. 심장에 이상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며 엄살 피우지 말라는 명령을 심장에게 내리듯 자기 최면을 거는 것 외에는 내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맑고 깨끗하게 울린다.

연산자 오류로 생각이 멎는 듯한 때가 있다. 네트워크 저 뒤편에서는 열심히 자판의 단추나 마우스 단추를 누르며 뭔가 주고 받는 거 있는데, 나 홀로 스피커와 마이크의 부적절한 사이의 대가로 얻는 째지는 소리같은 소리가 머리 이쪽편에서 저쪽편을 꿰뚫고 지나가며 생각 흐름이 정지한다. 열심히 달려가다 보이지 않는 벽에 파묻혀 멈춰버린 거 같다. 마치 공기가 나를 박제하려고 순식간에 응축한 것 마냥. 뒤통수 어느 지점에서는 열심히 Ctrl + Alt + Del 이나 Ctrl + Shift + ESC 단추를 누르며 긴급 상황을 해제하려는 외침이 있는 거 같은데 이마 바로 위쪽 어딘가는 딱 멎었다. 그런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머리는 한 가지 생각으로 굉장히 맑고 깨끗하게 울린다.

나 죽는건가?

누구나 많이 걷거나 운동을 하면 발목이나 무릎, 정강이쪽 인대나 뒤꿈치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픔을 느낀 건 기능성 평발이었기 때문이지, 누구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죽는건가 싶은 상황들 역시 누구나 겪는 일이라 생각했다. 기능성 평발이라는 진단을 내린 선릉동의 한 정형외과 의사의 말은 내 증상을 악화시키지는 않았지만, 내가 믿어왔던 진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거창한)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내 삶에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했다.

나 죽는건가?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라는 생각이 어느 덧,

나 죽는건가? 왜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아야 하는걸까?

로 바뀌어 내 몸뚱아리를, 내 머리를, 내 유전자를 탓하고 있다.

나 죽는건가?

글쎄, 이젠 어찌 되건 내 알 바 아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이 익숙한 죽음 체험을 어떤 식으로든 끝마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죽음 체험을 죽이든가, 죽음 체험이 나를 죽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