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차이. 10억원을 지켜주세요.
17 Dec 2006P사에서 얼마 전부터 방송에 내보내고 있는 광고가 여전히 남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10억을 받았습니다”로 시작하는 그 광고.
남자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는 남편이 죽자 10억을 받고 행복하게 사는 아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야 조금씩 다르다만 하고픈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그 광고를 보고 느낀 광고 내용은 '집을 지켜오던 남편이 죽어 버팀목을 잃었는데 P사 플래너(Planner)가 남편처럼 우리의 자산을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어 10억원을 받았고 그래서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남편이 있었을 때처럼 그 큰 돈을 외부로부터 지켜줄만큼 믿음직스럽고 자산 관리 잘하는 P사라는 내용이다.
당차고 마음 굳은 여성이라면 모르겠지만, 모질다는 말을 들을만큼 마음씀이 단단한 여성이 아니라면 분명 주변에 보험금으로 받은 그 큰 돈을 이리 저리 뜯기기 쉽상이다. 주변에 (돈이건 권력이건, 어떤 식이건)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다. 정말 못되먹은 마음으로 악질처럼 뜯어 먹으려 달려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으로 작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어쨌건 10억원은 도와 달라는 사람 다 도와줄만큼 끝도 보이지 않는 액수가 아니다.
광고를 뜯어보자. 광고에 나타난 상황을 보면 당장 수입이 없을 경우 10억원으로 남은 삶을 여유롭게 보내기는 좀 힘들어보인다. 광고에도 나왔듯이 아이는 어린데다 여자 아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결혼하면 관습과 인습상 시집을 모시거나 부부끼리 살지 친어머니를 모시긴 쉽지 않다. 게다가 남편을 잃은 여자는 돈을 벌 기술이 없는 걸로 보인다. 광고 초반에 나오는 장면이 세차인데 이는 맞벌이나 돈벌이를 해본 여자를 나타내기 위함보다는 집을 지키는 주부를 나타내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주부가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라 돈벌이에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큼을 뜻한다. 당장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학원에 보내고, 먹고 살려 한다면 마음이 다급하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섣부르게 장사를 시작해 실패하거나 사업을 하려다 사기를 당해 폐인되는 사례는 드라마나 소설에서 흔치 않게 나오지 않았던가? 아니면 '~카더라'며 '아는 사람의 누구'의 경험담이거나.
경제 지식이나 활동이 부족한 아내를 두고 떠난 남편인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기왕 내가(남편) 죽는다면 자산을 맡길 믿을 만한 자산 관리자가 있으면 할 것 같다. 세상과 사회가 가진 잔혹함과 냉정함을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을 아내가 안절 부절 못하다 10억원이라는 큰 돈을 다 날리고 죽을 고생하는 것보다는 자산을 관리해줄 믿고 맡길 사람이 있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난 그 P사 광고에서 그런 공감을 느꼈고 오해 소지를 일으킬 여지는 있어도 참 현실성 있고 호소력 있는 광고라 생각한다.
내가 공감을 일으킨 기획 의도로 만든 광고가 맞다면, 이 광고가 오해를 받는 상황이 아쉽다. 그래도 일부 남자들이 느끼는 짜증이나 분노, 불쾌함을 공감한다. 그렇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긴 하다. 그래서 난 이 광고에 대해서는 일부 남자들 관점과 내 관점에 차이가 있다고 해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