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와 놀거리

놀이의 구성

게임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 동기
  • 역할 수행
  • 보상

누구나 알고 있고 아주 간단한 놀이인 "가위, 바위, 보"를 예로 들어보자.

  • 동기 : 이 여성의 부드럽고 가녀린 손목을 만지고 싶다
  • 역할 수행 : 손을 이용하여 가위, 바위, 보 동작을 취한다
  • 보상 : 이 여성의 손목을 잡고 손가락으로 때리기

놀이나 오락에 따라 복잡한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구성은 같다.

그런데 하나의 놀이나 오락을 오래 즐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질리는 문제도 있지만, 금방 규칙에 익숙해져서 '보상'이 시시해지고 '수행'도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보상을 꿀맛 나게 하려면 '수행'을 어렵게 하거나 '보상'이 아주 끝내주면 된다. 하지만, 유형 보상이건 무형 보상이건 보상은 유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끝내주는 보상은 흔하지 않을수록 빛을 발하는데, 놀이를 반복하면서 빛은 바래진다.

'수행'은 다르다. 같은 보상일지라도 수행 내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보상으로 물을 주는 놀이가 있다고 하자. 이 보상을 얻은 사람 둘이 있는데, 첫 번째 사람은 1분간 숨쉬기 운동을 수행해서 물을 받았고 두 번째 사람은 1분간 온 힘으로 달리기를 해서 물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두 번째 사람이 이 보상을 더 감격에 겨워 할 것이다.

키우기

한정된 보상을 더 가치있게 하려면 수행의 난이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이때 가장 무난하게 들어가는 수행 난이도 요소는 '키우기'다. '수행' 과정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면 보상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려면 이 놀이에 대한 내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오락을 예로 들면, 세상을 장악하려는 악당과 이를 물리치려는 영웅이 있는데 영웅은 현재 힘이 없다. 그래서 열심히 토끼나 늑대를 때려잡으며 힘을 키우고,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간 고수를 찾아가 공격 기술을 배우며, 악당을 결딴낼 강력한 전설의 무기를 취했다. 비록 영웅은 자신을 육성하기 위해 이미 환갑이 되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지만, 어렵게나마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해낸다. 영웅은 환갑이 되도록 노력한 끝에 목적을 이루고 목표에 도달했으니 이 어찌 감동이 아니겠는가?

싸이월드와 키우기

싸이월드를 놀이 요소로 잘라보자.

  • 동기 : 여자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
  • 수행 : 열심히 예쁜 사랑 글, 혈액형별 사랑법, 별자리별 성격 등등 글을 퍼다 담고, 잘 나온 사진을 올린다. '투데이 멤버'도 도전한다.
  • 보상 : 많은 여자들이 일촌 신청을 했고, 번개하자고 난리다.

여기서 지켜봐야 하는 요소는 '수행'이며, 이 수행은 다분히 '키우기' 성격에 강하다.

오락 속 남자 주인공이 되어 오락 속 가상의 여자를 꾀어서 뽀뽀도 하고 소풍을 가기 위해 설레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열심히 '연애 오락'을 즐기는 경우와 비교해도 큰 차이 없는 흐름이다.

싸이월드의 목표와 목적은 이용자들이 서로 은밀한(폐쇄성) 관계를, 즉 인맥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그 수단은 바로 미니홈피다.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꾀기 위해서는 외모에 신경 써야 하듯이, 싸이월드 안에서 자신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미니홈피를 잘 꾸며야 한다.

흥미로운 경험담이 있다. 난 매일 싸이월드 투데이 멤버에 선정된 여자의 미니홈피에 간다. 대체로 20대 초반이고 (사진상에선) 예쁘거나 귀엽고 애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녀들과 사귀기 위해서 그녀들의 미니홈피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꽃구경하듯 방문한다. 그러다 정말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여자다 싶으면 (용감하게도) 일촌 신청을 한다.

물론, 대체로 일촌 수락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전혀 수락을 받지 못한 건 아닌데, 미니홈피를 꾸미지 않아 썰렁한 당시에는 전혀 수락을 받지 못했지만 배경 음악도 깔고 껍데기도 달고 미니미와 미니룸도 꾸민 후에는 수락을 받은 것이다. 물론, 잘 나온 사진 위주로 사진첩을 채운 것도 잊지 않았다.

  • 투데이 멤버에 선정된 예쁜 여자와 일촌을 맺는 보상을 얻으려고 미니홈피라는 '육성 수단'을 활용한다.
  • 세상을 장악하려는 사악한 악당을 물리쳐서 명예라는 보상을 얻으려고 나 자신(혹은 오락 속 주인공)이라는 '육성 수단'을 활용한다.

말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꼴이다. 동기가 분명하고, 수행에 적당한 노력이 필요하며 수행에 대한 보상이 간간이 발생하는 이 흐름은 엄청난 중독성을 일으킨다. 도박은 이 흐름의 균형이 환상 같아서 수 많은 사람들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중독되는 것이다.

놀거리

현재 싸이월드의 놀거리(수행 요소)는 미니홈피 키우기다. 보상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vision) 쉽게 보이고, 이 '쉬움'이 싸이월드의 강점이다. 그러나 이 쉬움이 싸이월드의 한계이다. 나처럼 도메인을 얻고, 누리집 계정을 얻은 뒤 블로그 도구를 설치하여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인맥을 닦으려면 싸이월드보다 더 험난하고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싸이월드보다 놀거리는 더 많고, 개인의 상표화(brand)라는 보상은 싸이월드보다 더 크다. 만일, 싸이월드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컸다면 나는 기꺼이 싸이월드를 선택했을 것이다.

내가 neopetsgopets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곳들 역시 싸이월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바를 목표로 하면서 놀거리는 더 많은데 있다. 단순히 사진을 올리고 글을 올리는 수행 요소보다는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며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수행 요소가 더 매력 있다. 또한, 싸이월드의 상호작용성(interactive)이 이 서비스들보다 약한 단점도 있다. 이건 댓글 달기나 미니룸, 스토리룸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이것이 싸이월드의 주 무기가 아닌 관계로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놀이는 사람이 언어를 만들기 전부터, 문화가 발생하기 전부터 즐겼던 행위이다. 현 싸이월드는 놀이 관점으로 봤을 때 꽤 훌륭한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좀 더 진화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것이다. 언제까지나 가위, 바위, 보만 즐기라고 할 순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