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조화의 찻집, 노리
08 Apr 2006홍대 부근 회사 다닐 때, 우연히 이곳에 간 적이 있다. 별다방은 시끄러운데다 내가 커피를 잘 못마시니 조용하고 깔끔한 찻집을 찾아 헤매이다 찾았다. 말로 약도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발이 이끄는 대로 찾아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동화 속 찻집처럼, 번화가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엔 어두컴컴해서 장사 안하는 줄 알았는데 민망스럽게도 출입문에는 개장 중임을 알리는 팻말이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노리(Nori)였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아늑하고 편안한 밝은 찻집을 연상케 하는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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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홍대 입구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2호선 홍대입구역을 기준으로 홍대의 반대 방향(1번 출구)쪽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간판 역시 명확히 다르다.
뜨겁게(?) 맞이하는 붉은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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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면 어두컴컴한데 막상 들어오니 묘한 불빛이 실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불빛을 잘 나타내기 위해 불빛이 약한 곳은 어둡게 했나보다. 뚜렷함은 대비가 강할수록 분명해진다.
잎사귀 상처를 보면 가짜 잎사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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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앉은 자리는 입구에 계산대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다른 곳은 어둡거나 불빛이 강해서 자연 빛이 많이 들어오는 자리를 잡다보니 가장 분위기가 밋밋한 곳에 앉게 됐다.
내 자리 뒤에는 연못과 작은 폭포를 흉내낸 어항이 있었다. 으레 그런 연못에 있을 법한 버드나무는 풀 잎사귀가 마치 버드나무인 양 물 위를 애잔하게 콕 찌르고 있다.
얼핏 싸구려 술집 느낌이 날 뻔한 파란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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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붉은 공기와는 달리 가게 안쪽은 어두운 곳으로 파랗고 노란 눈동자가 반짝인다.
늘 대충이다. 특히 먹는 곳엔 더욱 대충이다. 하물며 마시는 일은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귀찮은 이유보다는 다기에 차를 우리는 별도 절차를 겪을 기회가 없던 이유가 가장 컸다. 물론, 내게 다기가 있었다 손 치더라도 이렇게 일일이 우려내어 마실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 전통 다기는 주전자가 결코 작지 않다고 한다. 작은 다기는 중국식이라 한다. 아니, 그 반대였던가? 분명한 것은 주전자와 찻잔은 서로 문화가 달랐다. 찻잔이 우리 식이라면 주전자는 중국식, 혹은 그 반대. 차림판에 차 외에도 술이 있었는데, 한 탁자 위에 서로 다른 문화에서 탄생한 찻잔과 주전자가 함께 있는 것 만큼이나 한 차림판에 술과 차가 함께 있는 것도 묘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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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곳 노리는 여러 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두컴컴한 셈틀 본체 안처럼 가게는 어두웠고, 붉고 파랗고 노란 불빛 덩어리가 어둠의 빈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미처 불빛이 채우지 못한 사이 사이엔 국악이나 동양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내 귀가 반가이 맞이한 '슬기둥'이나 '여자 12 악방' 음악도 있었고, 황병기 선생님의 거문고 연주도 나왔던 듯 싶다.
주인 여자의 우리말 발음은 어색했고, 차림판 구성도 어색했고, 찻집 분위기와 음악도 어색했다. 하지만, 차 몇 모금이 입안 길을 따라 위를 적시고 손끝 실핏줄까지 이르자 이 어색한 조합은 어느새 하나로 어우러져 보였다.
나이 들면 뭐하고 싶냐는 물음에 입버릇처럼 습관처럼 대답하던 찻집이 있다. 차림판에 없더라도 단골이 바라는 밥 해주고, 차 안사도 되니 나와 말 동무하다 갈 수 있으며, 무질서하고 부자연스러운 조화를 납득하며 만끽할 수 있는 찻집을 차리고 싶다. 어쩌면 이곳은 내 머리, 아니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찻집과 가까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