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수퍼맨과 1980년대 수퍼맨

Yes24에서 수퍼맨 리턴즈 표를 할인해주더라. 할인받고 조조할인으로 표를 끊으니 수수료까지 합쳐서 2500원이 나오길래 적립금으로 처리했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밥 대신 토마토 한 개를 진동반동 먹다보니 어제 어머니께서 어제 무치신 오이지가 구쁘다. 헹궈내듯 대충 머리를 감고 MP3 재생기를 목에 걸며 길을 나선다.

「 Situation 14 ... 」

영어 회화가 시작되려 하길래 얼른 노래로 순서를 바꿨다. 내 귀를 눙치듯 경쾌하면서도 힘이 실린 Papa roach의 Blanket of fear 가 마냥 즐겁다.

「 I'm falling in my dream I finally hit the ground,
I'm falling in my dream I finally hit the ground! 」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 등교가 몸에 익은 것 마냥 영화관에는 초중고등학생들이 어수선하게 도떼기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학생이던 10여년 전과 다른 점은 별로 없어 보였다. 끼리 끼리 모여 앉아 건들거리며 남이 쉬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불량스러운 느낌을 내려하지만 풋웃음 나오게 어설픈 남학생들. 어깨와 뒷목에 힘을 주며 옆을 지나가는 다른 남자를 꼬나보지만 여물지 않은 좁은 어깨와 옹골차게 익은 여드름은 그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남들은 보이지 않는양 시끌 시끌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 색색이 화려하지만 헝겊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옷을 입고 다소 불편해보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뭇한 가슴살보다 가슴 속옷 선이 더 분명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자리는 통로쪽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앉은 사람도 없어 부담 없이 두 팔을 팔걸이에 올리고 앉았다. 8시 50분에 시작한다는 영화는 이런 저런 광고를 강요한 후 9시 10분쯤 시작했다. 역시 많은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은 학생들이었다. 영화가 시작된 후에도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하나 둘 끊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오른팔은 앞으로, 왼팔은 구부리고 앞으로 달리며 입으로 부르던 노래 소리가 나왔다. 빰빠바 바 빠바바바~ 나도 모르게 햐아~ 소리를 냈다. 스타워즈하면 딱 떠오르는 그 노래 소리를 1999년 극장에서 스타워즈 Episode 1에서 들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뭉클함이었다. 지금도 스타워즈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린 그때에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영화였다. 일요일,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에 가면 이발소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일요일엔 먹으라는 노래를 부르던 자장면 맛을 흉내낸 라면 광고와 수퍼맨이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한참 수퍼맨이 녹색 돌덩이에 헉헉 거리며 내 눈을 사로 잡을때면 여지없이 내 차례가 되어 날 안달나게 만들었다. 가끔 눈치 빠르고 친절한 이발사 아저씨는 의자를 돌려 내가 수퍼맨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왜 집에 있을 때는 쉽게 보지 못했는데 이발소에 오면 수퍼맨을 볼 수 있었을까. 잠깐 딴생각에 젖었다. 평소엔 어릴 적에 이발소에 가서 면도날에 베이거나 등으로 흘러내려가는 머리카락에 옴쭐거리는 내게 가만 있지 못하냐며 꾸짖던 불편한 기억만 되살아났는데, 좋은 기억을 담아 잠가놓은 상자를 푸는 열쇠처럼 수퍼맨 리턴즈는 갈색빛 푸근한 기억을 꺼내주었던 것이다.

초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 충분한 초월한 능력을 영화에서 많이 보여주었다. 어릴 때 TV에서 보던 수퍼맨은 달리던 기차를 멈추는 것도 대단히 힘들어하며 낑낑댔는데, 세월이 흐른만큼 수퍼맨도 더 초월했는지 만화보다 더 화려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옛날보다 더 녹색 돌덩이에 약해진 것 같기도 했다.

여학생들이 깔깔깔 웃었다. 왜 웃는걸까? 저 학생들이 수퍼맨을 보며 느끼는 맛과 내가 느끼는 맛이 달라서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그런걸까. 옛날에 TV에서 수퍼맨 봤다고 해봐야 어머니 뱃속이었을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수퍼맨의 초능력과 자장면 맛 나는 라면 면발을 입에서 질질 흘리며 동경의 눈으로 봐왔던 수퍼맨의 초능력엔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

넘칠듯한 오줌의 압박에 내 오줌보 모양을 아픔으로 실감하며 2시간 30여분짜리 영화는 끝났다. 영화의 감칠맛나는 이야기 전개나 현실과 구분 안가는 영상을 감상하기 보다는 일요일마다 나를 설레게 했던 1980년대를 감상했다.

그래, 영웅이라면 째째하게 동료의 능력을 도움 받으며 악당과 싸워나가지 말고 혼자서 벌해야지. 근데, 수퍼맨. 당신 말야. 몇 십년 지난 올해엔 추락하는 비행기도 받아들일정도로 세졌는데, 앞으로 몇 십년이 더 지나면 지축이라도 바꾸겠더라이미 더한 짓도 해봤었군. 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