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읽기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얘기인데, 나는 한자를 거의 읽지 못한다. 내 이름을 쓰고 읽고 뜻을 아는 걸 기특하게 생각할만큼 한자를 모른다. 다른 분야도 취약하지만 유독 한자에 더 취약한 이유는 내가 한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외우기를 잘해서 초등학생 때 매주 토요일 마다 치뤘던 한자 쪽지 시험 때마다 나는 상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 받은 상장 30장 중 25장 정도는 한자 쪽지 시험으로 받은 것이다. (나머지는 무려 수학 경시 대회. @_@)

어느 날, 나는 외우기에 지쳤다. 그래서, 흔히들 외우는 과목이라고 하는 국사, 세계사, 한문 성적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사를 이해할 생각은 안하고 외우려 했으니 국사와 세계사 성적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하다만, 한자는 이해하려 해도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이상한 문자 체계라고 생각해서 외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자 외우기는 관두고 국영수 과목 점수를 올려 빈 점수를 채우기로 했다. 덕분에 내 성적은 기대치와 목표치에서 늘 2%, 아니 20% 부족했다.

난 아직도 한자는 참으로 지랄 맞고 짜증나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한자를 읽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 닥치면 한자를 바라보는 내 눈에선 파란 빛이 돌 정도로 화를 느낀다. 내가 한자를 모르는만큼 싫어하게 되었다.

김성동의 천자문처럼 훌륭한 책을 볼 때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답답하고 김성동 작가에게 미안해진다. 이렇게 좋은 책을 보는데도 좀처럼 한자를 익히지 못하고 책 앞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천자문 중 앞부분 열댓글자는 외웠다. 어? 이상하다? 내가 아무리 한자를 몰라도 이 글자가 이렇게 생긴 것 같진 않은데... 하며, 자세히 보니 간체였다. 영어 단어 30개 외울 시간 들여서 한자 열댓개를 외웠는데 난 간체를 외운 것이다! 정체를 보니 못알아보겠다. 그래서, 2개월째 한자 익히기를 하지 않고 있다. orz

올해 안에 영어 말하기/듣기와 읽기, 쓰기가 나아지면, 내년 초부터는 일어와 중국어를 익히려 한다. 말하고 듣기야 글자와 관계 없이 덤벼들 수 있을지 몰라도, 읽고 쓰려면 역시 한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무리 우리가 쓰는 한자말과 중국어, 일어의 한자말에 차이가 있다 해도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주변 사람 중 한 명은 일어를 잘 못하지만 한자를 많이 알고 있어 대충 문장 뜻을 이해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실은 한자 공부할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바둥대는 느낌이다.

만일, 역사를 비롯해서 통섭의 눈을 좇지 않고 있다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한자를 못읽어 겪는 몇 번 안되는 불편함을 무시하고 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나라 말을 익히려는 이유처럼, 한자는 절실히 필요가 되었다. 우리를 알고 세계를 알고, 나를 알고 사람의 심리를 알며, 정신을 알고 돈을 알려면 다른 나라 말과 글은 꼭 필요하다. 한자도 그렇다.

왜 앎을 좇는 이들은 대부분 한자를 그리 많이 아는가. 단순히 아는 자가 한자를 외우는 여유일까? 싶었는데, 내가 한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닥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은 것을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싶으면 돋보기가 필요하듯이, 더 깊이 알고자 한다면 한자라는 수단이 필요하며, 한자 그 자체가 하나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한자의 학문성이나 천자문의 문학성의 매력을 느끼고 있진 않지만 해볼 의지는 조금 생겼다.

자, 마음 굳게 먹고 한자에 달려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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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