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뿌리 깊은 나무
28 Aug 2006이정명 장편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잠 덜 깬 아침에 변기에 앉아 똥을 누며 읽기에 적당하다. 책의 수준이나 질 때문이 아니다. 아침에 변기에 앉아 조선왕조실록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 나오려던 똥도 잔뜩 긴장해서 도로 들어갈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대신 가볍게 읽기에 좋은 ‘뿌리 깊은 나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대신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보는 것이 똥 누는데 더 좋다.
가볍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잘 짜여진 책은 아니다.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됨됨이는 한결같음이 없고(주인공의 멍청함에 화가 나는 장면이 숱한데 정말 뜬금 없이 똘똘함을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인물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갈등을 일으키는 장치이자 요소 간 연결은 짜임새가 깔끔치도 않고 너무 서두르듯 입막음한 듯 개운치도 않다. 더구나 악당 두목이 행한 행동과 목적에 비해 악당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단서도 없다시피 해서 악당 두목에 대한 분노나 노여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조선 전기 왕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력도 이 소설엔 거의 없는 점 등, 팩션(faction) 소설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책 치고는 역사의 모순도 제법 많다. 그리고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도 어색하기 그지 없다. 주인공과 여주인공 간 사랑을 다루고 싶은 작가 마음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고 매듭짓는 건 농락이라고 밖에. 소설 다빈치 코드를 중학생이 쓴 판타지 소설 정도로 평가한 사람도 있는데 이 책은 다빈치 코드보다 조금 더 부족하다.
그래도 묵직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수구 꼴통과 진보의 싸움을 가벼운 요소들로 다루는 점은 괜찮다. 지나치게 단순할만큼 정치성도 책의 주제에 뻔히 드러내는데, 그점이 이 책을 똥꼬에 부담 주지 않게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그만인 군것질 같은 책이다. 식사용으로는 좋지 않을 지 몰라도 사랑방에서는 군것질거리가 최고다. 다빈치 코드가 그러했듯, 이 책도 군것질 하듯 가볍게 부담 없이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