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귀가 이상하다

왼쪽 귀가 좀 약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요즘 부쩍 왼쪽 귀가 안좋아졌다. 조금 강한 소리가 들리면 귀 안쪽이 은근히 아프고, 가끔 귓 속에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들어가 가구 배치라도 다시 하는 듯한 긁적 긁적 소리가 들린다. 귓밥을 파면 늘 왼쪽이 더 푸짐하다.

턱 관절이 안좋거나 몸이 잘못 휘어서 그런다는 말도 있는데, 내 생각엔 오래도록 이어폰을 써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요즘엔 소리를 크게 키우지 않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옆사람에게 소음일 정도로 크게 들었다.

참 예민한 귀를 가져서 뭉개진 소리나 밋밋한 소리도 잡아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청력 자체가 좋다기 보다는 놓치지 쉬운 사소한 소리들까지 잘 낚아챈다. 근데 왼쪽 귀 상태가 안좋아지면서 간혹 고주파 소리가 왼쪽 귀 안쪽에서 울리곤 하고, 그러다 보니 귀가 예전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더구나 요즘엔 사오정과 의형제 맺을 정도로 말을 못알아 듣는다. 조금만 못알아 듣는다 싶으면 다른 나랏말로 들리기 일쑤고, 명백한 우리말이라도 말을 잘못 알아 듣곤 한다. 난청이 되고 있나보다. 아직 한창인 나이인데 벌써 이러나, 덜컥 겁이 나서 요 며칠 휴대용 MP3 재생기를 들고 다니지 않고 있다. 듣는 것이라고 해봐야 영어나 일본어 회화이지만, 종류가 무엇이건 귀에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

며칠. 며칠. 그리고 며칠.
새삼 세상은 참 시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소화 불량에 걸린 듯한 버스가 개스를 개워내는 불편한 소리와 간간히 귓속으로 강하게 파고드는 원치 않는 버스 음성 광고, 화가 난 듯 쿠릉대는 지하철과 전달에 온 힘이 실린 행상꾼의 외침. 정체는 있지만 정체를 느낄 수 없는 정체 모를 온갖 소리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내 귀와 머리와 뒷목을 때린다. 다 먹고 살자고 내는 소리인데 그 소리에 숨이 턱 막혔다.

소리를 피해 소리가 닿지 않을 곳으로 피하면 머리 위에서는 형광등이 일하는 고주파 소리를 들려준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감시하듯 늘 내 머리 위에 있는 각종 조명 기구들이 내는 소리는 고막을 보호하려 귓구멍을 막은 내 손가락 마저 뚫어서 머리 속을 직접 울린다. 아니, 어쩌면 내 머리 속에서 내게 순종과 순응을 명령하는 어떤 작은 무엇이 형광등으로부터 빛이라는 끼니를 얻고선 쮜이이이이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왼쪽 귀가 아퍼서 겁이 나는 것보다 내가 정말 살고 있는건가 반문하는 겁이 더 크다.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큰 손이 형광등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는 명령을 머리에 집어 넣고, 그 소리를 감추기 위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땀내나는 소음들을 일으키는 건지도 모르잖은가.

후욱.
귀삽에 퍼담긴 귓밥은 얼마 안됐다. 좀 찐득한 느낌도 든다. 잠깐 개운하더니 이번엔 귓 속이 아려온다. 침을 거칠게 꿀꺽 삼키며 기압으로 잠깐 제압해본다. 어차피 헛된 조치임을 알면서도 잠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헛된 몸짓을 해본다.

오늘도 내 왼쪽 귀는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