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고민을 맛볼 수 있는 서비스
19 Mar 20071. 해부하기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오락(게임, game)을 만들며 먹고 산다.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오락 하나 만드는 시간은 무척 길다. 기획을 오래 했거나 오랜 시간을 삽으로 땅 파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뼈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순수 개발 기간 자체가 오래 걸린다. 흔히들 만만하게 보는 가벼운 오락들(Casual game) 조차도 1년 정도 걸리기도 하며, 기획자가 만들려고 고민한 기간까지 합치면 1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개발 기간이 길면 몇 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첫 번째 위험은 유행에 한 발 늦은 오락이 나오기 쉽다. 여기서 유행이란 이용자가 선호하는 오락 형태를 뜻하기도 하지만, 컴퓨터(혹은 오락기) 장비 사양이 발전하여 시대에 떨어지는 기능이나 성능을 가진 오락을 뜻하기도 한다. 두 번째 위험은 개발 기간이 길다 보니 실패 했을 때 타격이 워낙 커서 기획자들이 개발에 앞서 많은 생각을 오래 하는데, 많고 깊은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으레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교류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산에 틀어 박혀 혼자서 미친 듯이 생각해서 내놓은 기획이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놓은 기획과 비슷한 경우가 생각 외로 대단히 많다. 그만큼 사람들 생각은 비슷 비슷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보랏빛 소를 만드는 사람들(보통 천재라 불린다)은 극소수이다. 세 번째 위험은 작은 회사일 수록 흔한 위험인데 배고파 굶어 죽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진짜로 굶어 죽는 게 아니고 회사 같은 조직이 흩어지는 것이다. 네 번째 위험은 일관성을 갖고 개발을 하지 못하고 안쪽이나 바깥쪽 환경에 흔들려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오락을 만드는 경우이다. 워낙 개발 기간이 길어서 그만큼 다른 이의 생각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이외 여러 위험 요소가 있다. 그래서 오락 개발은 개발 후 분석, 무덤 디비기(post mortem)라고도 하는 작업을 무척 열심히 해야 한다. 자신이 만든 오락이건 남이 만든 오락이건 개발을 마친(온라인 오락이라면 서비스를 개시한 때를 1차 개발 완료로 봐야 할 것이다) 오락을 열심히 해부하고 들여다 봐야 한다. 온라인 오락은 즐기는 호흡(시간, 기간)이 워낙 길어서 개발 후 분석을 하기 쉽진 않다. 서비스를 열었을 때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모습을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발 후 분석을 해야만 실패 후 사기꾼으로 내몰리는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개발 후 분석(post mortem)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거리가 없는 경우엔 더 그렇다. 다른 곳에서 만든 오락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재미 없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만든 졸작이건, 내 취향이 아닌 오락이건 공통되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하나 있다. 바로 기획자의 고민을 찾을 때이다. 나와 함께 만든 게 아닌데 그 오락이나 서비스를 기획한 사람이 고민을 내가 공감하는 짜릿한 느낌. 말 그대로 me too! 를 외치는 소름 끼치는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오락 기획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오락이나 서비스를 만지작거리며 맛있는 속살 발라 먹으려고 코를 킁킁 대다가 맛있는 살코기 부위, 그러니까 "아, 이거 만든 기획자가 여기서 이런 고민을 했나보구나. 무지 골치 아파 했겠구만. 낄낄" 거릴만한 요소를 찾아내면 그것이 어떤 것이건 나는 좋아한다. 인정을 하는 경우도 참 많다. 물론, 정말 별 생각 없이 습관이나 관습처럼, 혹은 누가 시키거나 따라한 티가 역력한 경우가 아주 많지만, 기획자나 개발자의 고민과 치열한 토론이 뭍어나는 요소를 잔뜩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내가 닌텐도 오락들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이유이다.
미투데이와 플레이토크
최근 비공개 시범 서비스를 개장한 미투데이와 Springnote를 보며 칭찬하고, 애정을 갖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곤 한다. 이 두 곳은 이용하며 이것 저것 만질 때 마다 기획자나 개발자의 고민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런 고민이 너무 진하게 뭍어 있어서 눈치가 아주 빠른 사람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꼼꼼히 보면 앞으로 뭘 하려는지도 눈치 챌 수도 있다.
서비스가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단순해서 그런 것이지, 그렇게 추켜 세울 필요가 없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단순하게 이용자가 접근하고 쓸 수 있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그런 경험이나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수 있다.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용자가 이거 어떻게 먹냐고 묻지 않고 알아서 떠먹을 수 있게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Playtalk에 실망하고 마음을 접은 건 오늘이다. 사실 난 Playtalk를 쓰면서 개발자의 고민을 느끼지/찾지 못했다. 오랜 시간 이용자 접근성(웹 표준이니 뭐니를 떠나서 이용자 조작 체계(User Interface) 측면)을 고민했을 미투데이를 그대로 가져오는 듯한 껍데기를 가지고 서비스를 개장했을 때도 나는 Playtalk를 그다지 부정하지 않았다. 기획자나 개발자의 고민을 느낄 수 없어 서비스 분석하는 맛은 없었지만,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미투데이와 사뭇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둘 다 가볍게 생각을 내뱉으며 사람간 관계에 계속 새로운 작은 돌을 던지게(event) 하는 기획은 같다. 하지만, 미투데이는 '남기고 교류한다'는 색을 띄고 있다면, 플레이토크는 '흘려보내듯 교류한다'는 색을 띄고 있다. 떠드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문화나 분위기는 이렇게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각 서비스가 지금처럼 나아간다면 얼마 후 모습은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쓰는 형식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플레이토크를 그다지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플레이토크에 새로 생긴 기능(달력과 댓글에 공감하기)은 플레이토크가 가진 원래 색을 희석시키고 미투데이 방향을 따라가는 것들이다. 달력 기능은 흘려보내듯 쓰는 가벼운 이야기를 뒤적여 볼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고, 공감은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볼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미투데이가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차별화와 독창성으로 다른 영역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교본이 된 서비스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짓이다. 이런 건 경쟁이 아니다.
그런 행위를 옳고 그름으로 구별하기 전에, 플레이토크 개발자가 정말 많고 깊은 생각 끝에 넣은 저 기능이 정말 현재 플레이토크가 가진 특성을 살려주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의아하고, 그런 고민을 했는지 조차 찾지 못해 실망을 하고 말았다. 아, 결국 많은 고민 끝에 만든 서비스가 아니라 단지 따라한 것 일 뿐이었는가! 하는 안타까움과 실망스러움. 별 생각없이 미투데이 따라한 것이어도 실망이고, 미투데이를 따라하는 게 아닌 정말 예전부터 준비해온 고민과 생각에서 나온 기획이라고 해도 실망이다.
쓸쓸함
이용자 입장에선 더 재밌고 쉽게(초대장 같은 것 필요 없다던가)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더 와닿을 것이다. 각 서비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 맛을 찾고자 고민하고 동료 얼굴에 침 튀어가며 토론했을 가열찬 낮과 밤은 어쨌건 눈에 보이지 않는 뒤쪽 세상 이야기 일 뿐. 하지만, 기획자 고민을 느낄 수 없던 서비스가 이젠 대놓고 그런 맛 따위는 필요 없다고 외치듯이 발걸음을 보여주어 안타깝고 슬프고 실망스러울 뿐이다. 내가 저런 맛을 찾는 기획자나 개발자가 아닌, 그냥 손에 맞는 것이 마냥 좋은 이용자였다면... 하는 기분을 느껴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