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걸었어. 도쿄 거리를 11시간 걸었어.
24 Aug 2007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빗 속을 걸으니
옛 생각도 나대...</p>울적해 노래도 불렀어.
저절로 눈물이 흐르대.
너도 내 모습을 보았다면
바보라고 했을거야.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미안해 너의 집 앞이야~난 너를 사랑해~ 우우~ 우우.
1994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라는 노래 1절이다. 전화를 걸었다는 말과 길을 걸었다는 두 뜻을 품은 노랫말이 재밌다. 지금 들어도 좋은 노래.
어제 나는 도쿄 현장 조사를 목적으로 몇 몇 동네를 걸어다니며 일본 사람들은 어찌 사나 보고 다녔다. 아침 10시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 20분쯤 들어왔고, 점심과 저녁 밥 먹는 시간 30분씩을 빼면 거의 11시간을 걸어다닌 셈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지도 위에 대충 그려보면,

이렇게 다녔다. 정확하진 않다. 표지판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대충 저렇게 생긴 한자를 걷다 본 기억이 나는 것 뿐이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겠고 직선 거리로만 대충 쟀을 때 40km 이상 걸은 듯 한데 잘 모르겠다. 골목길 사이 사이로 요리 조리 다녔으니까.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꼈다. 몰랐던 바를 알게 되기도 했고, 막연하게 알던 걸 확인하기도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시간 들여 돌아다닌 보람은 있었다고 스스로 평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활한지 3주차이지만 난 히라가나도 거의 몰랐다. 이, 타, 사, 고, 우처럼 많이 보는 글자는 알아보는데 “라”행이나 “마”행, “하”행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어제 하루 내내 걷고 나서 나는 히라가나를 거의 외웠다. 더불어 낱말 몇 개도 익혔다. orz
그간 그렇게 글자를 익히려고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대충 외워서 그렇고 그 다음 이유는 써먹질 않아서 그렇다. 그런데 어제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표지판이나 안내 지도를 잘 보며 각 글자와 소리를 꼼꼼하게 기억했다. 난 휴대전화기도 없고 회사 사람들 연락처도 모르며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게다가 어제 돌아다닌 곳들은 거의 내가 처음 가보는 곳들이었다. 지역 이름을 꼼꼼히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눈이 밝아서 동서남북 방향만 알면 목적지에 잘 찾아간다. 하지만 그것도 그 지역이나 주변 지역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때 얘기이지, 생판 모르는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선 동서남북만으로는 나다니기에 “아주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시부야에서 계속 서쪽으로 걸으면 몇 km 오차가 있긴 해도 숙소 근처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은 했기 때문에 절박하진 않았다.
어제 새벽에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자다 말고 오른쪽 종아리에 쥐가 제대로 나서 한참을 다리 붙들고 굴러다니며 낑낑댔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일어나 숙소를 나서고 12시간만에 들어왔다. 다행히 날씨가 무덥지 않아서 별 일 없었지, 평소처럼 땡볕 더위였다면 지금쯤 몸살나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에서 겪는 이야기들이야 여행한 날 블로그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 글에선 다른 나라에 오랜 기간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하루쯤은 큰 길과 작은 길로 다니며 그네들 문화와 생활을 익히고 위기(?) 속에서 박진감을 느끼며 글자나 낱말을 익혀보길 권하고 싶다. 아, 물론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