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과 매트릭스
27 Aug 20071. 들어가며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두 번 각성한다. 첫 번째 각성은 매트릭스 속에서 매트릭스 통제(control)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각성은 매트릭스 밖에서 매트릭스를 보고 건드릴 수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 내용을 해석하는 사람은 많고 해석도 다양한데, 이를 휴대전화기와 아이폰에 연결해서 생각해봤다. 가벼운 마음으로 썼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라.
2. 각성하기 전. 1세대 휴대전화기
휴대전화기는 정말 많은 발전을 했다. 초기엔 전화기를 휴대한다는 쓰임새에 걸맞는 기능에 충실했다. 이러 이러한 멋진 기능이 많아서 좋다가 아니라 전화 잘 걸리고 튼튼해서 좋다는 식이다. 현대에서(현 팬텍) 나오던 걸리버는 “걸리면 걸리는 걸리버”, 삼성에선 어디에서나 걸린다고 “애니콜”이었으며, LG 사이언(CION (지금은 CYON이다)) 광고에서 송윤아는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응~ 잘 들려”라며 여유롭게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날 방해할 수 없어”라는 대사를 읊었다.
휴대전화기 제조사 뿐 아니라 휴대전화 망사업자도 마찬가지였다. SKT은 제때 제대로 전화 걸리며 통화 품질 좋다며 Speed 011을 내세웠고, 신세기 통신은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에서 017은 어디에서나 전화 잘 걸린다고 홍보를 했다.
즉, 99년까지 휴대전화기에게 가장 큰 덕목은 전화 걸면 걸리고 잘 들리고 튼튼한 것이었다. 자, 여기까지 1세대.
3. 쓰임새에서 벗어나다. 첫 번째 각성.
다음 세대는(2세대) 네오가 첫 번째 각성한 것과 견줄 수 있다. 기존엔 휴대전화기는 “전화기”에 “휴대성”이 붙은 것이었다면, 슬슬 전화하는 것과 직접 관계 없는 기능들이 전화기에 붙기 시작한 것이다. 2000~2001년부터 휴대전화기는 휴대“전화기”에서 “휴대”전화기로 변해갔다. 늘 갖고 다니며 전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오락도 할 수 있고, 전화가 왔을 때 소리도 좀 더 예쁘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집전화에서 전화 오는 소리가 아름다워봐야 얼마나 가치 있을까? 어차피 듣는 사람이야 가족일텐데. 하지만, 늘 휴대하고 다니는 휴대전화기는 남들도 대하게 된다.
이렇게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는” 쓰임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쓰임새라는 틀, 굴레에서 말이다. 전화를 주고 받는 쓰임새(틀,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독립된 여러 기능들. 이 첫 번째 각성은 약 5년을 끌고 갔다.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지 않고 첫 번째 각성을 계속 발전시켜 온 것이다.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TV(dmb)를 보더라도 이는 첫 번째 각성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4. 전화기에서 벗어나다. 두 번째 각성.
두 번째 각성은 2005년에 슬슬 보이더니 2006년부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올 해 들어 사람들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기가 똑똑해졌다고 해서 스마트 폰(smart phone)이라고 하더라. 두 번째 각성을 했다는 휴대전화기들이 첫 번째 각성한 휴대전화기들과 뭐가 다른걸까? 얘네들도 예전 것들과 마찬가지로 기능만 나아진 것 아닐까?
잠시 네오의 두 번째 각성을 떠올려 보자. 첫 번째 각성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통제에서 벗어났다. 매트릭스 안에 연결했을 때 말이다. 두 번째 각성은 굳이 매트릭스에 접속하지 않고도 기계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는 것들을 건드릴 수 있게 되었다. 현실 세계에서도 기계들을 폭파시킨 바로 그 모습이다.
매트릭스에 접속하지 않고도 매트릭스 속 네오처럼 힘을 발휘한다. 이게 휴대전화기와 무슨 상관이 있냐하면, 바로 무선이다. 네오는 두 번째 각성을 통해 유선에서 벗어나 무선으로 시스템에 접근하여 첫 번째 각성에서 이룬 것들을 행할 수 있게 된다.
휴대전화기는 당연히 무선이다. 그럼 이미 첫 번째 각성에 갈 것도 없이 1세대에서 이미 두 번째 각성을 이룬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두 번째 각성을 통해 첫 번째 각성에서 이룬 것들을 행하고, 그 행동이 유의미해야 한다. 그래야 두 번째 각성, 즉 3세대를 이룬 것이다.
첫 번째 각성을 통해 우린 휴대전화기를 이용하여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는다. 적바림(memo)을 해두고, 좀 특이한 경우는 휴대전화기를 PDA처럼 쓰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과 자료들은 휴대전화기 속에 갇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러한 자료를 만들고 관리하는 휴대전화기 속 도구들(Application)은 휴대전화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는 방법이 무선일 뿐, 전화기 속 알맹이들은 유선도 무선도 타지 못한 채 전화기 속에 갇혀 있었다.
Web 2.0이니 뭐니 하면서 눈으로 드러나고 겪고 있는 문화는 열린 공간과 참여이다. 그런 문화를 이끄는 기술들은 참 많은데, 그 중에서 내가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위젯(widget)이다. 작은 부품이나 장치를 뜻하는 낱말인 위젯은 그 이름 그대로 몇 가지 작지만 명확한 목적을 가진 도구를 뜻한다. 날씨 위젯, 지도 위젯 등 다양하기도 하다. 이런 위젯은 개념으로 봤을 때 “어떤 목적성을 가진 작은 무른모(Application)”이고, 핵심은 “개인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독립”이다.
서울 지도를 보려고 서울 지도 정보를 모두 내가 보유할 필요가 없이, 서울 지도 정보를 가지고 있는 어느 곳에 접속해서 해당 정보를 가져와 보면 참 효율 있지 않을까? 이걸 되게 하는 접근과 소통 방법이나 수단이 바로 Open API이다. 이런 Open API를 써서 바깥에서 작지만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정보를 가져오는 배달부나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이 위젯이다. 지도를 보려고 지도 서비스를 하는 곳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컴퓨터나 무선 장치에서 편하게 가져와 보는 것이다.
자, 이 위젯의 개념만 보면 첫 번째 각성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위젯의 핵심을 보면 두 번째 각성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휴대전화기 속에 있는 날씨 보기나 동영상 보기 기능들이(작은 무른모) 휴대전화기라는 틀과 굴레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통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건 가능했다. 근데 왜 이제 와서 새삼 대단한 신 기술인 것 마냥 얘기를 하는 것이냐하면, 예전엔 휴대전화기 무선 인터넷이 무척 느렸고 요즘 것들은 빠르기 때문이다. 아주 느렸기 때문에 글자 몇 개 디리릭 보내는 SMS(단문 전송 서비스)보다 용량이 훨씬 큰 동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을 주고 받기 아주 짜증스러웠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네트워크로 전송 받아 보기 힘드니 이용하지 않을 수 밖에 없고, 이용하지 않는 기술은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5. 아이폰과 두 번째 각성
휴대전화기가 두 번째 각성을 하여 3세대에 이르렀다고 치자. “3세대”라는 낱말을 써서 혼란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여기서 쓰고 있는 “3세대”는 두 번째 각성을 뜻하는 것이며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규격인 3세대(3g)와는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말이다. 어쨌건, 휴대전화기가 두 번째 각성을 했다고 치고, 이것이 아이폰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렇게 길게 떠들었는지를 밝히며 이야기를 마무리 할 때가 됐다.
아이폰 UI를 유심히 보면 여러 기능들이 갈래로 묶여 있지 않고 책상에 흩뿌려 놓은 것처럼 낱개로 나와 있다. 각 기능들이 정해진 목적을 행하는 작은 도구들이고, 이것이 위젯이라면 아이폰 UI는 위젯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hoto라는 작은 덩어리를 꾹 누르면 사진 관련 도구가 짠 뜨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의 핵심은 이런 위젯들을 인터넷 망에 접속해서 쓸 수 있고, 이런 위젯들을 내장된 웹브라우저를 이용하여 편리하게 내려 받고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간 여러 기사나 사용기를 보며 추측했고 실제로 아이폰을 만져보며 추측이 맞구나 생각했던 점이 있다. 아이폰은 전화기로써 참 불편하여 휴대전화기 쓰임새로는 절대 사지 않을 확고한 의지가 생긴다. 생각보다 무겁고 생각 외로 불편하다.
그런데, 아이폰에 위젯처럼 들어가 있는 여러 무른모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면 무척 두근거린다. 구글 지도, gmail, 구글 캘린더와 iCal을 네트워크로 실시간 연동을 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접근하고, Youtube에 연결되어 동영상을 TV처럼 볼 수 있는 Rimo 같은 게 위젯 형태로 나와 그 아름다운 아이폰 UI에 붙는다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아, 물론 이렇게 갖고 노는 것은 전화기 쓰임새는 아니다.
phone 이라는 대중에게 무난하고 쉬운 이름을 붙인 제품이긴 하지만, 아이폰으로 갖고 놀 수 있는 핵심은 바로 두 번째 각성 사항이다. 여지껏 두 번째 각성을 노린 여러 기종들이 나왔지만 그런 문화를 만들지 못하거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슬쩍 사라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플은 iTunes라는 다목적 매체(multimedia) 가게도 운영하고 있고, 구글과 손 잡아 구글에서 제공하는 멋진 서비스들도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거기에다 해킹을 하면 애플에서 정식 지원하지 않는 것들도 즐길 수 있다(물론 나쁜 짓이다^^).
예전에 두 번째 각성을 도전했다가 실패한 네오들과는 달리 이번 네오(아이폰)는 두 번째 각성을 제대로 해서 두 번째 각성 이후 세상을 열어갈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비록 휴대전화기로 쓰기엔 짜증스럽지만, 전화기라 인식하지 않고 전화 기능도 있는 휴대 위젯 실행기라 생각하면 참 멋지고 탐나는 제품이다. 왠지 아이폰이라면 두 번째 각성을 성공하여 그 이후 세상도 이끌어 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나저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숭고한 희생을 하여 시온을 해방한다. 서로를 파괴하려는 두 세력을 파괴가 아니라 공존이라는 다른 답을 내밀고 합의하게끔 이끌어 내었고, 그 대가로 자신을 희생한다. 아이폰은 어떻게 될까? 역대 네오들보다는 좀 더 좋은 환경에 있긴 한데, 정말 기대대로 멋지게 두 번째 각성 이후 세계를 이끌 것인가, 아니면 자신은 희생하고 다른 이들이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어서 아이폰 역시 다른 네오들과 비슷해서 그냥 그렇게 서서히 죽을 것인가. 현재 일어나는 현상만 보면 애플 특유라고 할 수 있는 애플식 문화 만들기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 미미하다. 참 흥미롭고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