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심심한 늦은 밤에 누룽지 우물 우물
31 Dec 2007푸짐한 입김이 입 밖에 절로 맺히는 춥디 추운 2008년 1월 1일 0시 39분. 밥 약간에 통닭을 맥주와 함께 해치웠는데 배가 출출하다. 호빵도 생각나고 귤도 생각나고 라면 하나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도 같고.
실은 하나 밖에 없는 운동화를 빨은 탓에 밖에 나갈 수 없기에 미리 비상 식량처럼 사둔 군것질거리가 여럿 있었다. 감자칩도 있었고 쌀과자도 있었고, 떡볶이 재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촐하기도 하고 푸짐하기도 한 먹거리들을 제치고 나는 누룽지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어떤 생각이나 계획을 뒤엎는 감성 한 조각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길거리 떡볶이를 먹을 때는 으레 오뎅(어묵) 국물을 함께 먹어줘야 한다는 본능 같은 감성. 야식 감성이랄까? ^^
누룽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후라이팬에 밥을 올리고 데우면 그만이다. 그래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좀 더 손을 놀렸다.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덥혀 놓은 뒤 밥 한 공기를 넉넉히 올려 꾹 꾹 눌렀다. 밑면은 그을려가며 노릇 노릇 익어가고 윗면은 촉촉하다. 이때 설탕을 조금 집어 흩뿌렸다. 안뿌려도 누룽지를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나지만 몰랑 몰랑한 감성에 단 맛을 더하고 싶었다.
후라이팬 넓이를 감안했을 때 밥 한 공기는 누룽지를 만들기에 다소 많은 양이다. 이렇게 많은 밥을 넣은 이유는 우선 밥이 많아 통통한 누룽지가 쫄깃 쫄깃해서 맛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밥 주걱을 잘못 놀려 생각보다 많이 밥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볶아보니 나쁘지 않았다.
올리브유로 볶아서 누룽지 치고는 고소했다. 그리고 설탕을 살짝 넣어 침이 입 안에서 절로 고이는 감칠맛이 살짝 맴돈다. 처음 누룽지를 만든 것 치고는 괜찮았다. ^^
바구니에 귤을 담고 통통하고 촉촉한 누룽지와 목 메이지 않게 누룽지와 조금 비슷한 맛을 내는 둥글레차 한 잔, 그리고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2008년 첫날을 맞이해본다. 소박하다면 소박한 밤군것질. 조금 귀찮긴 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밤군것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