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남의 생일

내 생일과 남의 생일

예전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자식의 생일은 나를 낳고 키운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날이라 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부모님께서 나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시면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 요소이고, 내가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한다.

이와 더불어 다른 사람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면 나는 축하 인사에 고맙다는 답을 하는 것 보다는, 매 해 생일을 함께 기릴 수 있는 인연 자체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내 생일을 진정으로 아끼고 기념할 수 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2009년부터는 이 생각을 실천하려 한다.

석가, 예수의 생일

내일은 성탄절이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 생일이다. 다르게 간단히 말해 남의 생일이다. 아무리 신이 우리 곁에 있다거나, 혹은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석가탄신일이나 성탄절은 내 생일은 아니니 남의 생일이다.

재밌는 현상은 석가탄신일보다는 성탄절을 좀 더 자신이 자신을 즐기는 시기로 보내는 경향이 강한 점이다. 왜 예수 생일에 연인과 밤 늦도록 놀거나 숙박 업소 시장에 민간자금 투입하는 데 동참하는지 모르겠다. 꼭 이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젊은 층일수록 성탄절을 연인이 어울리는 강한 계기로 쓰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보면 연인이 어울려 놀기에는 석가탄신일이 더 좋다. 봄이라 나들이 가기도 좋고, 바쁜 1분기를 보낸 직후라 대체로 사회 활동을 하느라 바쁘지도 않다. 들러붙어도 더워서 땀이 날 정도도 아니다.

젊은 연인 뿐 아니라 각종 매체나 상점도 석가탄신일보다는 성탄절에 더 떠들썩하다. 매체는 왜 그렇게 떠들썩한 걸까? TV 편성표를 보더라도 석가모니 생일보다는 예수 생일에 돈 냄새가 팍팍 느껴진다.

시장도 만만치 않다. 예수 생일 뿐 아니라 연말, 연초도 함께 겨냥하는 걸로 보기엔, 12월부터 예수 생일을 알리고 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참으로 독실한 예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가끔 헷갈리는 점은 산타가 혹시 예수는 아닐까 하는 점이다. 예수 생일인데 예수보다는 산타가 더 이야기거리에 오른다. 예수 생일이니 예수를 나타내는 변장보다는 산타 복장을 더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하는 산타 모습이 참으로 친숙한데, 그 산타 복장은 1930년대 코카콜라사가 입힌 것이다. 성탄절이 예수 생일보다는 산타클로스가 버로우(burrow) 풀고 나타나는 것에 익숙한 사람(나이가 어릴수록 더 익숙한)에게는 코카콜라 창립기념일을 기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아, 이건 너무 꺼칠한 말이고.

어쨌든.

남의 생일을 빌미로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이들이 꼴보기 싫다며 24일부터 25일까지 잠을 자겠다는 사람도 있고, 누구 생일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생일을 기리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의 생일 덕에 내 야근 일정도 조절되어 25일은 쉴 수 있다. 워낙 강력한 분의 생일이라 그 분과 비교하면 참으로 작은 존재인 여느 사람들의 25일 생일이 묻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부각되거나.

이러나 저러나 오늘은 예수 생일 하루 전이고, 내일은 당일이다. 1년 중 하루는 내 생일을 계기로 주변 사람과 세상에 고맙다고 인사를, 나머지 날들은 남의 생일을 계기로 주변 사람과 세상에 고맙다는 인사를 올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선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