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글쓰기

2003년 11월부터 개인 누리집을 버리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햇수로 어느 덧 5년차 블로거(Blogger)인 셈인데, 티스토리와 Adsense 조합으로 일어난 요즘 흐름과 소위 파워 블로거나 전업 블로거가 국내에서도 제법 많이 나오고 있는 요즘 흐름은 참 생소하면서도 신기하다.

요즘은 장난감(mash up service) 만드느라 블로그를 많이 챙기지도 않고 다른 블로그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자연스레 블로그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한참 열심히 블로그를 관리하고 다른 블로그에 돌아다닐 때에도 열심히 돌아다니진 않았다. 몇 번 나가긴 했는데 대부분 아쉬울 때가 많아서 안나가다 보니 어느 새 난 잊혀졌더라. 엉엉.

블로그라는 낱말이 들어가거나 혹은 그런 냄새가 물씬 나는 모임이나 행사에 나갈 지 말 지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 이를테면 블로그 축제 같은 행사나 모임엔 나가지 않는다. 영화 괴물 번개 모임엔 나갔다. 아마도 시간이 된다면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에 나갈 것이다. 모임을 가리는 기준은 간단하다. 만나는 이유나 목적이 “블로그를 하는 사람, 즉 블로거끼리 만나는 것 자체”인지 아닌지이다.

블로그 축제는 주제나 성격이 애매하게 느껴질 만큼 대놓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자는 모임이다. 이런 모임엔 어지간해서는 나가지 않는다. 저렇게 뚜렷한 주제 없이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주제인 모임은 아무리 좋게 봐도 세력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난 그런 모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1인 혹은 개인 매체(media) 블로그라는 놈 성격상 무리화, 세력화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싫어서 까페나 동호회 활동도 잘 안하는데 블로그 공간에 와서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블로그는 개인 매체이니 혼자 놀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를 합쳐야 한다면 기꺼이 함께 합칠 수 있다. 주제를 중심으로 뭉칠 수 있고 그 과정이 건전하고 납득할 수 있다면, 그러한 움직임은 실로 환영할 만 하다. 개개인이 원자화 되어 자신의 개성과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게 움직이다가 어떤 주제에 대해 뭉쳐 마치 분자처럼 하나된 모습을 보이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그러한 주제 없이 단순히 만나고 뭉치는 세력화는 자칫 주제를 위한 무리가 아니라 주제에 폭력 같은 힘을 싣거나 주장을 내기 위한 권력이 되기 쉽상이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블로그 축제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 상당 수가 그런 상황을 우려한다. 어떤 주제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위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블로거 한 명이 기획하고 준비한 블로그 관련 모임이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후원을 받는 현상은 좋은 흐름이다. 그만큼 개인 매체가 가진 힘과 목소리에 기업과 정부가 귀를 기울이고 있고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는 반증이며, 이런 자리는 앞길을 닦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블로거들 싸잡아 무리짓고 세력화 하면 그만한 힘을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외부 세력에 휘둘리기도 쉽다. 숙달된 게릴라 요원처럼 개개인으로 쪼개진 원자화 된 작은 매체들이 주제(issue, content, agenda, ...) 단위로 뭉쳐 목소리를 내면 개개인을 분류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기업이나 기관 입장에선 아주 까다로울 것이다.

뭐... 너무 앞서 나가는 듯 싶다. 혜민아빠님이 그럴 요량으로 저런 행사를 연 것도 아니며 앞서 말한 현상은 그럴 수도 있는 상황, 그러니까 결과이지 그런 상황에 대한 의도가 아니다. 더 써봐야 같은 말 되풀이 하는 셈이고. 부디 블로그 축제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가진 향기를 퍼뜨릴 수 있는 이 강한 사회 흐름에 건전하게 힘이 더 실어주길 바랄 뿐이다. 비록 나는 현 블로그 축제에 공감하지 않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변방에서 조용히 글이나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