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L English. 당신의 공부법을 해킹하라.

책을 받다. 뒤통수를 맞다

[caption id="" align="alignleft" width="75" caption="OTL English"]OTL English[/caption]

a77ila님께서 책을 내셨다며 하나 보내주신다는 말씀에 무척 고맙고 기대했다. 더욱이 영어에 대한 책이라고 하셔서 기대감은 더욱 컸다. 내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그동안 a77ila님께서 블로그에 써오신 글을 보건데 분명 정석, 정론이라는 낱말이 딱 떠오를 책을 쓰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책을 받아 보고나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무려 세 방. 미리 말해두자면, 가장 세고 아팠던 한 방은 맨 마지막 것이다.

한 방은 내 예상을 깨는 내용, 그러니까 마치 임시 처방이나 철학이 없는 자기계발서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같아서 그랬다. 나 이런 책 무지 싫어한다. 심지어 빨리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자기계발서 대부분은 사기책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 한 방은 책 읽는 사람이 약오를만큼 공부를 정말 자~알 하셨기 때문이다. 자~알 했다는 말뜻은 성적같은 결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책에 나온대로라면 a77ila님 눈에 나는 대단히 효율 떨어지고 지구만큼 두꺼운 책을 파고들 고지식쟁이이다. 책을 사면 1쪽이나 머릿말도 아니고, 표지 앞장에 있는 책 이름부터 꼼꼼히 보기 시작해서 맨 마지막쪽이라 할 수 있는 표지 뒷장에 적힌 책값까지 본다. 모르면 다시 읽는다. 물론, 다시 읽을 때는 목차를 보고 다시 볼 부분만 다시 읽지만.

a77ila님은 어떠하던가. 흔히 하는 말로 선택과 집중을 아주 잘하며, 집중도 들입다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갈래화를 거쳐 두뇌에 있는 방 중 잘보이는 곳곳에 예쁘장하게 넣는 것이다.

이쯤되면 제대로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때라면 “아뿔싸... 속았다. 뭐에 속은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속았다. 그래서 더 약오르다”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근데 더 당혹스러운 점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세 번째 뒤통수 강타이다. 이 한 문장이 아니었으면 세 번째 뒤통수 강타는 없었을 것이다.

꼭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는데, 그 첫 번째 특징은 자기가 뭘 하는지, 그리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도저히 감도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 16쪽 중에서

English Hacking

a77ila님께선 원래 지으려던 책 이름은 English Hacking 이라고 하신다. 정말이지 이 이름이 더 어울린다. 이 책은 English Hacking 이 아니라 English Hacking 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현실성 있고 효율성 높게 공부하기 위한 각종 해킹 기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따른 공부 사례 중 영어를 든 것에 가깝다. 마치...

Hacking about Studying

- English 편 -

이런 인상이다.

이 책을 읽고 반성을 했다. 내 주 업은 기획이다. 회사 일이든, 개인 일이든, 놀러나가든, 구멍가게에 마실거리를 사러 나가든 기획 과정을 거친다. 기획이 몸에 배어 생활이 되었으며, 머리 속 생각 운용도 기획 논리 구조를 따른다. 그런데 공부 할 때엔 정말 무식할 정도로 계획과 기획없이 일단 달려들어 파고본다. a77ila님을 소환하여 책 내용에 나오는 그 친구분처럼 밥이라도 사드리며 뒤통수 맞아 마땅한데, 공짜로 책을 받아 맞았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뒤통수 긁적이게 하는 아쉬움

책은 시종일관 재밌으며 글놀림은 경쾌하다. 비수처럼 파고드는 날카로운 문장이 살아 숨쉰다. 그런데 이 생생함을  어지럽히는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모순으로 비춰질 수 있는 주장이 책 초중반과 중후반에 각각 나온다.

초중반에는 영어 얘기를 들을 때 맨 마지막에 들으라고 한다. 말을 하는 목적인 대상이 말 맨 뒤에 나오기 때문인데, 이는 영어 문장 구조가 주어 + 동사 + 목적어(절)이기 때문이다. Would F#df# $AF# coffee? 와 같이 말 앞부분을 대부분 놓쳐도 맨 뒤에 coffee가 나오니 대충 커피 마실 거냐고 묻는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목적어로 쓰이는 이름씨(명사)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이는 말(언어)과 소통으로 봤을 때 잘못된 내용이라 생각한다. 이름씨만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문장을 주고 받는 소통에서는 움직씨(동사)가 소통에서 뜻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는 중요한 말이 앞에 배치되어 뒷부분을 놓쳐도 큰 지장이 없고,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뒷탈이 없다.

책에도 나오듯이 영어는 주어 생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문장 구조이자 모든 영어 문장 구조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주어 + 동사 구조가 거의 언제나 성립되는 것이다. 예외 상황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말을 주고 받을 때 뜻 전달에 필요한 핵심은 맨 앞에 다 나오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영어 특성 중 하나로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내용은 중후반에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초중반 내용과 중후반 내용이 부딪히는 것이다.

나머지 아쉬움은 첫 번째 아쉬움과 비교해서 아주 사소하다. 예를 들면, 우리글(한글)과 우리말(한국어)을 구분하지 않고 오용하는 것이다. 분명 말과 글은 다르다. 글은 말을 기호로 나타내는 도구일 뿐이다. 알파벳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표기하듯이 말이다. 또 하나는 오타나 어색한 문장이 한 두 개 있는 정도. 마지막으로 꼽자면, 책값이 생각보다 비싸다.

공부 잘하고 싶다면, 영어 잘하고 싶다면 사도 좋은 책

첫 번째 뒤통수를 맞고 아직 얼얼한 상태에서 읽을 때만 하더라도 읽고나서 다른 사람이나 줘버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힘차게 고개 끄덕이며 그동안 생각없이 공부해왔다는 억울함이 커졌다.

낱말은 일 대 일로 대응하는 뜻을 외우지 말고, 그 낱말이 어떤 상황과 쓰임새, 뜻으로 쓰이고 있는지 정황을 이해하고 상상하라는 말. 영영사전을 보는 목적이 바로 이것인데 어느 순간 영영사전에 나오는 영어 문장 자체를 외우는 실수를 했기에 더 뼈아프게 읽혔다.

영어 듣기가 되지 않는 이유는 영어를 읽으며 받아들이는 빠르기가 상대방이 말하는 빠르기를 쫓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 mp3가 닳고 닳아 음질이 떨어질 정도로 회화 mp3를 들었지만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또렷한 영어 소리이지, 뜻이 아니었기에 더 뼈아프게 읽혔다. (참고로 mp3 를 아무리 듣는다고 음질이 떨어지진 않는다)

요즘 아는 사람이 영국 이민을 가려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공부나 공부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이 책을 추천했다. 이미 알아서 잘 공부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English Hacking 을 하여 더 높은 효율을 거두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