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주유천하를 떠나다
15 Apr 2009논어나 유교로, 혹은 시를 노래하듯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공자. 공자의 삶은 참으로 불우했다. 되는 일 하나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는 대단히 혼란스러워서 초나라, 노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들은 공자의 높은 이상과 깊은 학문 성취를 토대로 정치를 하려 하는 마음보다는 부국강병 묘책을 찾고자 했다. 즉, 공자의 정치 견해는 이론과 이상에 치우쳐져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고, 공자는 쉰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관직을 얻지 못하거나 하급 관직을 맡았을 뿐이다.
정말 공자의 정견은 실용성이 없었을까? 공자의 정치 이상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정명론(正名論)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너무 이상에 치우쳐진 말로 받아들일 만 하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상론자였을까? 공자께서 염구와 나눈 이야기를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
공자 말씀하셨다. “백성이 참으로 많구나”
이에 염구가 물었다. “백성이 많아져 번영하고 있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자께서 답하셨다. “부유하게 해야지”
염구가 물었다. “부유해지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쳐야지”
헐벗고 굶주린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인과 예를 말한다 하더라도 듣고 행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또, 군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려 옳은 것을 좇아야지 무턱대고 신의랍시고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貞而不諒)고 하였다. 원칙이나 이론에 갇혀 꽉 막힌 융통성 없이 처신하지 않고 각 때에 알맞은 행동을 했다. 즉, 공자가 이론주의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시대를 잘못 탔을 뿐이다. 하지만, 공자는 평생을 제대로 관직에 올라 뜻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자의 삶은 고난과 역경 자체였다.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7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주유천하를 하는 동안에는 민병대에게 오해를 사서 포위 당한 채 죽을 뻔 하기도 하고, 공자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환퇴는 커다란 나무 밑동을 베어 나무 테러를 하고 연이어 자객으로 하여금 암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게다가 패잔병을 만나 식량과 마차 등을 몽땅 빼앗긴 채 9일을 쫄쫄 굶기도 한다.
게다가 자신을 써줄 임금과 나라를 찾아 떠난 주유천하는 실패로 끝난 채 맞이한 70살에 이르렀을 때 아들이 죽었는데 관을 넣을 곽을 살 돈조차 없었고, 얼마 뒤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연(안휘)이 가난하게 살다 영양실조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안연이 죽었을 때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며 크게 슬퍼하였다. 또한, 제자 자로는 정치에 휘말려 살해 당하고 젓갈로 담가지며 시신을 모독 당했다. 이에 공자는 “아, 하늘이 마침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라며 슬퍼하였다.
하지만, 공자는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하지 않았기에 되는 일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비관주의자나 냉소주의자가 되거나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바로 춘추(역사책)를 저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 책 쓰는 것만으로 공자가 포기하지 않거나 타협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에 50대 중반 나이는 요즘 우리 나이로 치면 70살에 육박하는 나이라 생각한다. 그 나이에 하루에도 많은 도시 국가가 생기고 사라지는 춘추시대에 작은 나라 하나 세울 수 있음에도 인과 예를 지키려 자신을 알아보고 써줄 임금을 찾아 길을 떠나 14년을 천하를 다닌다.
요즘 나이 70살은 커녕 우리가 당시 공자 나이 55살에도 과연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을 쉽사리 떠날 수 있을까? 일찍이 학문의 극에 달하였으나 20여 년 거듭 기회가 따르지 않았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날 수 있을까? 55세 공자가 14년이 걸린 주유천하를 떠났음은 온갖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굴복하거나 좌절, 포기하지 않는 청년 정신을 뜻한다. 꺼지지 않는 열정이다.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닥치곤 한다. 그것을 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어려워하거나 차분히 해결해나가거나, 좌절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우리의 그릇 크기에 달렸다. 하지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릇은 얼마만한 지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살이 에이는 차가운 바람에 잠시 균형을 잃어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날 수 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삶은 꺼지지 않는다. 잠시 몸을 숙여 방향과 균형을 가다듬고 땅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을 공자는 몸소 보여주었다.
공자, 55세 나이에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다. 지치지 않는 청년 정신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비록 길을 떠나는 그 마음은 참담했을지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의지 때문이 아닐까. 천 년이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정도(正道)와 인도(人道)를 따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우리의 생각과 철학이 우리 삶 안에서라도 굳게 남아 자신을 잃지 않게 붙잡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