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찍을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아서.
03 Jun 2010조금 느즈막하게 일어났다. 커피를 마실 때나 쓰던 사마시는 생수에 밥을 말아서 김치와 함께 대충 점심을 떼우고선,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아직 주소지가 경기도 본가에 올라 있어 하남시 어느 동네에 있는 ㅅ초등학교로 투표를 하러 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더워서 그런지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예전 투표 때처럼 한산했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벗어 내리고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꺼냈다. 샛노랗게 탈색했던 때에 운전면허증을 갱신한 탓에 운전면허증엔 어설프게 사진 합성을 한 것처럼 노란 머리카락으로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얼굴이 있고, 이 신분증은 종종 내 신분을 증명하지 못한 채 본인 맞냐는 되물음을 받게 한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사진 속 청년이 짓고 있는 어벙한 표정을 재현하며 본인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 몇 시간째 입 꾹 다물고 있다가 숨구멍을 열고 한 첫 마디가 “저 맞아요”라서 목소리는 살짝 삐끗했고, 그래서 어리바리 수치 + 3이 되었다.
권리, 민주주의에서 권리란 곧 권력이다. 그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소지 별로 구분된 명부에서 내 이름이 적힌 옆 칸에 서명을 하며 슬쩍 위를 보니 아버지 서명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셨다고 하신다.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께서는 아들이 누구를 찍을지 안다며 아들이 찍을 사람을 찍으셨다고 말씀하시고선 웃으신다. 신뢰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적어도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성향이 같은 점에 대한 일치감을 담아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쩌면 주소지를 옮기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마지막 선거 투표가 될 것 같다. 전화 드리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