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걔는 왜 그래?
17 Oct 2012어떤 상황(issue)이 발생하고나서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거나 정말 같은 상황 겪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 대해 뇌의 시스템2(이성, 추론 영역)를 완전히 가동하여 꼼꼼히 그 상황의 이야기를 따져 분석하여 이해하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다수 사람은 시스템1(감정, 직관 영역)이 내린 직관으로 빠르게 판단해 버린다. 시스템2를 가동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며, 시스템2가 나서면 상황에 대해 다각도로 추론하고 분석하여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 않다보니 여러 경우를 가정하여 남겨놓는다. 즉, 옳고 그름, 이득과 손해, 아군과 적군과 같은 구분을 판단하지 못하고 불확실하고 찜찜하게 판단을 보류하게 되는데,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사람의 보편화된 성향상 시스템1이 출동하여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가동비용도 비싸고 결과물도 복잡하기만 한 시스템2를 가동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고 가동비용도 저렴하고 빠른 시스템1만으로 판단을 내린다1.
시스템2가 가동되더라도 시스템1이 빠르게 결정하고나면 시스템2가 그 결정을 기반으로 하여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스템2를 논리적인 생각을 하는 데 가동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1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위한 논리적인 말솜씨에 능하도록 가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자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변호사 놀이를 하는 중일 수도 있다2.
상황 상황마다 매번 시스템2를 가동하여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 다시 평가하며 이야기를 구성하기는 힘들고 어렵다. 시스템1이 빠르게 판단내린 결과에 시스템2가 논리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단초만으로 전체 상황 구성을 끝마치는 이유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 대해 당사자들은 각자 다른 기억, 정보, 감정과 맥락을 갖게 된다.
결국, “대체 걔는 왜 그래?”라는 말이 나온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구성을 한 게 아니라 상황에 대한 표면 정보 몇 개를 재료로 자신만의 이야기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이며, 이야기에 담기는 맥락과 기억, 감정은 모두 자신을 중심에 두고 보호하듯 감싸두른다. 그 상황에 대한 다른 당사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안 할 수 밖에 없으리라.
불행한 건 이래서는 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당사자 모두가 상황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이해해서 상대방과 내 상황을 인정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데, 어느 한 쪽이라도 그렇지 않은 채 자신만의 상황으로 이야기구성을 마친 상태에서는 상대방이 지거나 져줘야 한다.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의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언젠가는 봉합선을 찢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시말해 대체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이해하고 싶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당사자인 상대방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에서 소통이 시작된다. 물론, 많은 비용이 드는 시스템2를 가동하여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원래 다른 사람 생각을 이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건 비싸며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을 알아가는 건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대체 걔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럼 그 사람에 묻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이야기는 버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