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맞이하며 20년 전 판을 생각하다

게임 개발

20년 전에 첫 게임을 만들었다. 내 필명인 한날은 이 게임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설프고 재미없고 허섭했지만, 내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내 게임 얘기를 나누었다. 내 고교 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니 장래 희망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적혀 있었다. 당시엔 게임 개발이라는 직업이 사회에 인식되기 전이라서 편의상 게임 개발자 대신 컴퓨터 프로그래머라 적은 것인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 있다.

가끔 언제 다시 게임 업계에 돌아오냐는 안부성 질문을 받곤 한다. 게임 업계에 돌아갈 지 안 갈 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게임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게임을 만들 것이다.

홈페이지

20년 전에 내 홈페이지를 처음 열었다. 1997년부터는 게임 개발, 프로그래밍 등을 주제로 운영하다 1998년에 도메인을 사서 나 나름대로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려 했다. 꾸준하진 않지만 완전히 놓지 않고 계속 운영해 온 지난 20년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긴다.

나를 표현하는 익숙한 방법이 내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이다. 앞으로도 내 공간에 글을 쓸 것이다.

작더라도 내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아무리 잘하고 위협스러워도 남의 판에서는 승산이 없다. 판의 주인이 판을 엎고 새 규칙을 짜면 그만이다. 주인이 판 엎지 않게 아양 떨고 비위 맞추고, 규칙을 바꾸면 바꿀 규칙을 예측하며 그 판에 길들여지면 더이상 희망이 없다. 차라리 판의 주인이 한 짓에 삐쳐서 그 판을 떠나는 게 낫다. 내 판을 만들어 사람들이 내 판에 들어오고, 그 판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내가 바라는 진정한 독립이 이뤄진다.

하지만 난 그동안 준비되지 않았으며 진심으로 독립을 갈망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지만 정작 말로만 고민했을 뿐, 실행할만큼 고민하지 않았다. 여전히 남의 판에 기대어 마이너 버전 수준에서 내 몸뚱아리를 업그레이드 하려 아둥바둥거렸다.

앞으로 3~4년 뒤부터는 갈수록 내 판을 만드는 데 들이는 노력이 비싸질 것이라 예상한다. 내 판을 만드는 비용이 비싸질수록 포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포기하는 그때부터 남의 판에서 움직이는 장기말이자 노예가 될 것이다.

20년 전에 막연히 내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능력도 없으면서 게임 만들자며 사람들 꼬셔 게임개발팀을 만들었고, 하루 방문자가 몇 명이더라도 내 홈페이지에 내 글을 남기려 했다. 내 스토리를 갖고 싶었고 만들려 애썼다. 길들여지지 말자. 내 판의 20년 전 원시형을 잊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며 각오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