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출력거름망
05 Feb 2018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게 갈수록 힘에 부친다. 출력거름망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사소하게는 오타 확인부터 시작해 맞춤법과 단어 뜻을 확인한다. 글이나 말 내용과 무관하지만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이해관계자를 2008년부터 의식하고, 몇 년 전부터는 아직 몸과 머리에 익지 않은 정치적 올바름이나 꼰대성억제 거름망도 덧붙였다.
말 한 마디, 문장 하나 쓰는 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생각을 출력하지 않아도 괜찮더라. 아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더 낫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말이나 글을 남발했다. 내 말과 글 대다수는 세상에 그렇게까지 가치있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출력하는 것과 출력하지 않는 차이가 크지 않다. 질과 양을 꾸준하고 일정하게 유지한다면 의미있게 차이나겠지만, 거름망 여러 겹을 거치는 의지력이 너무 많이 든다.
내가 말하거나 글로 쓰려는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내 취향에 안 맞고 미묘하게 내 생각과는 다르곤 하지만, 그 차이 때문에 굳이 비싼 의지력을 들일 필요는 없다. 예전엔 들였는데 이제는 의지력이 달려서 아껴 써야 한다.
내가 바라는 해결책이 아니긴 하다. 여러 겹으로 작용하는 거름망에 익숙해져 거름망 모두를 한두 겹 거름망에 들어가는 의지력만으로도 통과하며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각 출력거름망은 고정되지 않아서 꾸준히 들여다보고 갱신해야 한다. 거름망을 통과하는 것도 벅찬데, 거름망 관리도 해야 한다.
개인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유지한 개인 공간을 앞으로 어떡할 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