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잘 그러지 않지만, 예전엔 MP3를 많이 모았다. 잘 정돈해서 모아두면 언제든 쉽고 편하게 찾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MP3를 모으다보니 음반이 절판되거나 아예 우리나라에 들어온 적이 없어서 쉽게 구하거나 들을 수 없는 음원도 쌓여갔다. 언젠가 MP3들 용량을 재보니 180gb 정도를 모았고 그 중 20gb는 구하기 힘든 MP3였다. 그리고 얼마 후 MP3를 모아 놓은 하드디스크를 통채로 날려 먹었다. 그날, 날씨는 내 마음과는 달리 참 맑았다.
그 이후로도 한 두 번 정도 MP3 하드디스크를 날려먹었고, 착하고 순한 나는 조금씩 삐뚫어져 갔다. 아니, 인터넷 음원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3,000원이면 내려 받지만 못할 뿐, 어지간한 음악은 편하고 쉽게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았다.
듣기 유료 서비스를 쓰다보니 가끔씩 돈을 주고 음원 하나씩 사게 됐다. 음원 계약 문제로 어제까지 듣던 음악을 오늘부터 듣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낱개로 사면 MP3 하나에 500원이라 그다지 싸지 않지만, MP3 내려받기 이용권을 사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이용권에 따라 다르지만 음원 하나 값이 100원 가까이 떨어지기도 한다.
음원 하나에 약 100원, 십자리 올림 처리해서 200원이라고 해도 무척 싸다. 왜냐하면 여기엔 음원 값 뿐 아니라, 보관료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MP3 하드디스크를 관리할 필요 없다. 언제든지 이미 산 MP3는 다시 내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은 횟수 제한이 있긴 하지만 아직 그 횟수를 넘긴 적은 없다. 200원이면 음원을 내 것으로 쓸 수 있고, 게다가 안날아가게 보관까지 해준다. 정말 싸다.
이렇게 산 MP3는 음원 정보(ID Tag)도 잘 들어가있다. 음악 정보가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은 음원은 재생기에서 이용할 때 여러 모로 불편하다. iTunes 에서는 더욱 불편하다. 하지만 각 음원에 정보를 제대로 써넣는 게 은근히 귀찮아서 누군가 대신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데, 유료로 사는 MP3엔 정보가 예쁘장하게 들어가 있다.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DRM이라고 해서 복제 방지 기능이 들어간 MP3는 제약이 따른다. 예를 들면, J 음원 서비스에서 쓰는 DRM을 해독할 수 있는 기능이 내가 쓰는 휴대용 MP3 재생기나 컴퓨터 음원 재생기에 없다면, 돈 주고 산 MP3를 내 기기에서 들을 수 없다. 그래도 요즘은 DRM 풀린 음원이 늘고 있다. DRM 제약은 이용자에게 불편함만 줄 뿐, 불법 복제율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속속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엔 꽤 비싸다고 생각했던 MP3. 이제는 귀찮게 공짜 MP3 구하려고 한참 발품 파느니 200~500원으로 사서 보관까지(backup) 해주는 유료 MP3를 많이 쓴다.
요즘엔 베토벤을 즐겨 듣고 있다. 계절을 타서 그런 건 아니지만, 가을엔 보통 재즈나 동서양 고전 음악을 즐겨 듣는데 이번 가을엔 서양 고전 음악(classical music)을 듣고 있다. 작년엔 판소리를 즐겨 들었는데 이번엔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온 셈이다.
딱히 베토벤을 콕 집어 들을 생각은 없었다. 별 생각없이 외장 하드디스크에 있는 서양 고전 음악 중 아무 폴더 몇 개를 노트북으로 옮겨서 듣는데 공교롭게도 그 폴더 대부분이 베토벤의 곡을 담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을 좋아하는데 때마침 하드디스크엔 베토벤 곡이 가득하니 자연스레 요즘 한참 즐겨 듣고 있다. 몇 개 꼽자면 교향곡 제 7번과 제 9번을 유달리 좋아한다. 9번 중에서 4악장 “합창”, 그 중에서도 “환희의 송가” 부분은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하고 유명하며 나 역시 좋아한다.
Beethoven Symphony 7. 지휘자 : 카라얀(Karajan)
요즘 방영 중인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더라. 카핑 베토벤과 베토벤 바이러스가 같은 건 줄 알고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네이버나 다음 같은 주요 포털 검색란에 “베토벤”을 치면 “베토벤 바이러스”가 맨 위에 올라오길래 호기심이 일어 몇 편을 보았다. 재밌었다.
극 중 인물인 작은 강건우(장근석 역)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이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 절대음감은 타고난다고 하는데, 이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에 여러 음을 구분해 알아 들을 정도로 귀가 좋은 것 같아 부러웠다. 저러면 우리 귀에 잘 안들리는 음역(주파수)도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만약 정말 그렇다면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거나 귀가 들을 수 있는 음역 밖에 있어 들리지 않는 악기 소리까지 생생히 들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간다. 꽤 어두컴컴한 생각을 가진 음침 청년처럼 보일테니 좀 더 순화를 하자면, 우리 감각은 계속 감이 떨어진다. 생활 습관에 따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을테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세월에 따라 감각이 떨어져간다.
그 중 하나가 듣는 감각, 즉 청각이다. 소음으로 꽉 찬 세상살이에 지쳐 귀가 약해질 수도 있고, 살면서 자연스레 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서양 고전 음악(클래식)은 어릴수록 더 생생하게 잘 듣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감이 떨어진 성인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음역에 속하는 악기 소리가 있을텐데, 이 소리를 어린 아이나 아기들은 성인 보다 더 잘 듣기 때문이다.
아기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기였을 때 기억도 별로 없고(어머니께선 억울해 하실 발언이다...), 무엇보다 그때 들었던 소리들이 지금보다 더 음질이 좋은지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서양 고전 음악을 비롯해서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알건 모르건, 기억하든 못하든 그 순간에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그렇게 자랐ㅇ어도 기억 못할 것이 분명할테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에 좋은 음향 시설로 LP에서 들려오는 클래식을 들은 적이 없는 점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는 나 자신을 비추어보면 말이다.
베토벤 교향곡들 듣다가 육아 계획 얘기를 하고 있다. 끄응. 얘기가 더 산으로 가기 전에 베토벤 교향곡 9번 동영상으로 글을 마쳐본다.
Beethoven Symphony 9. 지휘자 : 카라얀.
두 번째(아래) 동영상 중 8분 31초부터 시작하는 4악장은 워낙 유명해서 많이 친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