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자의 뻘짓

그간 회사에서 난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을 가진 18장짜리 기획서를 이 양식, 저 양식으로 서너번 바꾸었다.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가 쉽고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양식을 바꾼 것이다. 단지 할 일이 없다고 하기엔 제법 양이 많은 일이어서 약 10일 가량 걸렸다. 단순히 '복사하기/붙이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양식에 맞게 내용을 조금씩 손 보다보니 사실상 18장짜리 기획서를 3~4번 새로 쓴 셈이다. 미치고 따분한 뻘짓이다.

내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날은 지난 주 금요일. 한가했던 그 이전과 바뻐진 지금과 비교하면 해야 할 일 자체는 바뀐 것이 거의 없다. 단지 내가 할 일의 방향과 목표가 명확해진 것 뿐이다.

할 일의 방향과 목표는 역할과 권한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역할이 명확해도 권한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일을 수행하고 확정짓는데 불필요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권한이 필요보다 많으면 권한을 따르는 책임을 처리하느라 일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줄어든다.

예외가 있긴 하다. 기반 작업이 워낙 튼튼하고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호흡이 척척 맞으면 일을 하는데 권한보다 역할이 더 잘 살아난다. 즉, 권한이 필요한 정도보다 적거나 많아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환경에서 일할 행운을 얻기가 흔치 않다는 점.

내 일하는 환경을 얘기하자면, 기반 작업도 부실하고(할 사람이 없달까?) 호흡을 맞출만하면 엉뚱한 임무가 떨어져 호흡이 엉클어졌으며(3개월마다 개발 진행 평가를 받는다) 권한은 하는 일에 필요한 정도에 제법 못미친다(없느니만 못한 성격의 권한이 조금 있긴 하다). 간단히 말해서 일하기 아주 답답한 환경이다. 이때문에 나는 할 일이 태산 부럽지 않게 쌓여 오르지 못할 나무, 아니 산을 향해 엉금 엉금 기어가는 꼴이었다. 그 절박함과 막막함은 겪어본 이라면 잘 안다. 이때 마음을 잡지 못하면 업무 우울증, 즉 슬럼프에 빠진다.

다행스럽다. 용기를 내어 위에서 시킨 일을 조금 제껴두고 내 할 일의 기반 작업부터 다시 하기 시작했다. 두 번 개발 진행 평가를 거쳐보니 한 6개월간은 내 일과 개발 진행 평가를 위한 별도 작업(demo version for kick-off hurdle per 3 months)은 거의 관련이 없다. 평가를 위한 작업을 하느라 기반 작업을 하지 못해 일이 엉망이었고, 오르지 않는 일 능률만큼 내 신바람도 오르지 않았다. 이걸 살리려면 기반부터 닦아야 한다. 기반 작업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도 없다. PHP와 mySQL을 이용하여 500장 정도 될 기획 내용을 작은 단위로 쪼개 입력하고, 쓰임새에 맞게 출력하는 웹 관리 도구를 만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프로그래밍 흉내를 내니까 별 같잖은 실수를 저질러 귀찮긴 하지만, 이 귀찮음 몇 백 번을 겪고 나면 앞으로 1년 이상은 신나게 진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다행은 프로그래머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기획 내용이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전달되는 효율도 떨어지고 그래픽 자료(resources) 관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으며 기획과 그래픽 자료를 버무릴 프로그래머는 각 그래픽 자료의 근거지를 찾지 못했다. 분명 기획자는 기획자 나름대로 기획 일을 했고 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의 일이 무엇이고 내가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의 연관성을 쉽게 알지 못했다. 개발자들이 서로 제각기 일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결고리 역할을 할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프로그래머와 약간 얘기를 나눈 뒤 MS Excel로 자료 관리 문서(Graphic resource sheets)를 만들었다. 함수와 Excel 기능 몇 개로 몇 몇 일은 자동화했더니 그럴 듯 하다. 또 앞으로 어떤 그래픽 자료가 필요하고 어떤 형태로 요청이 오갈 것이며 프로그래머는 어떤 것만 참조하면 되는지 분명해졌다. 문서 하나로 기획자와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디자이너가 행복해졌다.

사소하고 쉬운 두 가지 일 덕분에 내가 일을 하기 좋아졌다. 모처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몇 십 개 되는 RSS 주소와 쌓인 글 백여개를 전혀 읽지 않았고 매일 습관처럼 하던 내 개인 일 몇 가지도 전혀 하지 않았다. 오직 회사 일만 했다. 지난 주에 주문한 스피커가 오늘 집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뻘짓. 경력자는 자신이 왜 뻘짓을 했고 뭘 해야 뻘짓을 더이상 하지 않을지 스스로 깨달으며 뻘짓하는 시간도 짧다. 새내기는 대체로 경력자가 옆에서 이끌어줘야 한다. 하지만, 경력자건 새내기건 뻘짓은 한다. 그런데 새내기보다 경력자의 뻘짓이 더 깊고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앞서 말했듯이 역할과 권한이 적절하게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뻘짓을 하고 싶지 않아도 뻘짓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한동안 한가하게 뻘짓을 했다.


소설, 뿌리 깊은 나무

이정명 장편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잠 덜 깬 아침에 변기에 앉아 똥을 누며 읽기에 적당하다. 책의 수준이나 질 때문이 아니다. 아침에 변기에 앉아 조선왕조실록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 나오려던 똥도 잔뜩 긴장해서 도로 들어갈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대신 가볍게 읽기에 좋은 ‘뿌리 깊은 나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대신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보는 것이 똥 누는데 더 좋다.

가볍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잘 짜여진 책은 아니다.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나 됨됨이는 한결같음이 없고(주인공의 멍청함에 화가 나는 장면이 숱한데 정말 뜬금 없이 똘똘함을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인물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갈등을 일으키는 장치이자 요소 간 연결은 짜임새가 깔끔치도 않고 너무 서두르듯 입막음한 듯 개운치도 않다. 더구나 악당 두목이 행한 행동과 목적에 비해 악당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단서도 없다시피 해서 악당 두목에 대한 분노나 노여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조선 전기 왕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력도 이 소설엔 거의 없는 점 등, 팩션(faction) 소설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책 치고는 역사의 모순도 제법 많다. 그리고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도 어색하기 그지 없다. 주인공과 여주인공 간 사랑을 다루고 싶은 작가 마음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고 매듭짓는 건 농락이라고 밖에. 소설 다빈치 코드를 중학생이 쓴 판타지 소설 정도로 평가한 사람도 있는데 이 책은 다빈치 코드보다 조금 더 부족하다.

그래도 묵직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수구 꼴통과 진보의 싸움을 가벼운 요소들로 다루는 점은 괜찮다. 지나치게 단순할만큼 정치성도 책의 주제에 뻔히 드러내는데, 그점이 이 책을 똥꼬에 부담 주지 않게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 그만인 군것질 같은 책이다. 식사용으로는 좋지 않을 지 몰라도 사랑방에서는 군것질거리가 최고다. 다빈치 코드가 그러했듯, 이 책도 군것질 하듯 가볍게 부담 없이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