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걸 느끼는 요즘

난 나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내 나이건 남의 나이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말에 예의만 있다면 반말을 하건 존대말을 하건 개념치 않으니 상대방의 나이를 더욱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운동 능력 덕분에 내 나이를 그다지 인지하지 못한다. 또레에 비해 운동 능력은 제법 팔팔해서 누군가 나를 잡아 먹는다면 높은 신선도와 탄력에 맛나게 먹지 않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남들은 한 군데쯤 단단히 뭉쳐있을 어깨나 뒷목도 늘 말랑 말랑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뻗뻗한 유연성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지금도 주효하다. 때문에 나이 먹고 있다는 걸 느낀 상황은 이런 상황들은 아니다.

나는 상처가 나면 보통 2~3일이면 거의 아문다. 모기에게 물린 흔적은 늦어도 24시간 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살갗이 가볍게 찢기는 경우는 2~3일 안에 연하디 연한 새 살로 덮여 상처가 최근에 일어났음을 증명해준다. 희미해진 3~4시간 전의 모기 물린 자국을 주변 사람에게 자랑할 때는 흡사 만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통각에 둔한 탓에 어딘가에 긁혀 살갗이 찢겨져 피가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1~2일만에 상처가 다 낫는 섬칫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참고로 나는 신체 건강한 3등급 감자...가 아닌 3급 현역이다. 좀비가 아니다.

살면서 먹은 밥들이 다 엉덩이로 가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던 2003년의 어느 날이었다. 5~6일 전 생긴 상처가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아서 검붉은 딱지가 살갗에 붙어있는게 눈에 띄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리고 희한한 일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상처는 늦게 나았고, 지금은 여느 사람들과 비슷하다. 뭐랄까, 3등급 감자에서 벗어나 1~2등급 감자가 되었다기 보다는 4등급 감자가 된 느낌이다. 마음에 슬픔이 서린다.

뭔가를 배울 때도 예전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고, 노력에 따라서 예전 같지 않은 배움의 수준을 채울 수 있다. 해가 바뀌고 비가 올 것이라는 예상을 느끼는 관절도 꾸준한 운동 등으로 보다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내 나이를 의식할 수 없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런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은 내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알게 한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이 아쉬움이 아닌 즐거운 회상이 되며 내가 나이를 먹고 있는 걸 느껴야 한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아직도 쉽지 않다고 느끼는 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턱걸이

지난 토요일, 마님이랑 오금 근린 공원에 갔다. 동네가 서울에서 외곽인 탓도 있지만, 마치 숲 속을 거니는 것처럼 나무 냄새나게 잘 구성한 공원이다. 역시 송파구는 돈 많다.


나이를 채우기 위해 먹는 떡국이 매년 엉덩이로 가나보다. 왜 이리 빵빵한 것인지...

나는 턱걸이 기구와 평행봉을 사랑한다.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마냥 좋다. 배드민턴장이 있는 구역으로 가보니 턱걸이 기구가 보이길래 냉큼 팔부터 갖다댄다. 두근 두근.


끄응차. 무거운 엉덩이가 공중에서 중심을 잡자 애꿎은 다리만 앞에서 덜렁거린다.

마님께 잘보이고픈 수줍은 마음에 두 팔 턱걸이가 아닌 한 팔에 매달려서 턱걸이를 해보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짝사랑하는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장기자랑에 나가서 무리하는 기분이다. 실은 엉덩이가 무거워서 평균 턱걸이 횟수인 10회에 못미친 7회 밖에 하지 못하여 무리를 하는 것이다. 운동 효과는 별로지만, 뭔가 힘 잘 써보인다.


나 안해 ... 구석에 박혀 좌절을 하더라도 양지 바른 곳에서 하리 ...

결국 한 팔에 매달려서 턱걸이를 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힘 주느라 추한 모습 밖에 보이지 못하여 양지 바른 구석에 박혀 좌절하고 말았다. 열심히 운동하여 언젠가는 한 팔에 매달리지 않고 순수하게 한 팔로만 턱걸이 해보일테다!
(실은 땅 위에서 바지런히 일하고 있는 개미를 찍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