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집단 포격(다구리)이래

나는 학창 시절, 학교에서 가는 극기 훈련을 대단히 싫어했다. 해가 쨍쨍한 내내 모래 바닥에서 단체 훈련을 시키기 때문인데, 그것이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집단의 통일성을 위해 개인이 유린 당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팔벌려뛰기를 할 때 맨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는다. 30회를 한다면 29까지는 구령을 붙여야하지만 30을 외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시 30회를 뛰거나 증가된 횟수의 팔벌려뛰기를 해야만 한다. 처음 몇 십회야 누군가의 실수에 웃음을 터뜨리며 실수한 사람을 비웃지만, 몇 백회에 달하면 웃음은 사라지고 무안한 수준의 욕지거리가 운동장을 메운다.

내가 저런 과정을 싫어하는 이유는 애초 단체의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과정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시 수십명의 급우들에게 욕지거리로 일점사를 받기 때문이다. 그 실수한 이가 만일 심성이 여린 이었다면 분명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집단이 개인을 짓밟는 상황을 대단히 싫어한다. 스타크래프트 팀플레이를 할 때도 상대 편이 나에게 단체로 몰려와 나를 공격하는 것도 스트레스이며, 우리 편이 상대 편의 한 명을 집중 공격하는 것도 나를 흥분시키지 못한다. 더욱이 얼굴에 철판깔고 마음 놓고 배설이 가능한 온라인 게시판은 집중 포격, 일명 다구리가 참으로 많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중 포격보다 더 싫은 경우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만 보면 집중 포격(다구리)이라며 혀를 쯔쯔 차는 이들이다. 그들은 초월한 양 팔짱을 끼고 격렬한(어쩌면 일방적인) 논쟁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 니들이 지금 하고 있는 다구리는 나쁜 짓이야. "

아, 네. 그렇군요?

온라인상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들 중에는 소모적으로 개인을 모욕하고 인신 공격하는 집중포격(다구리)형 논쟁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의견으로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격렬히 토론이 이뤄지는 논쟁이 있다. 전자의 경우를 토론이라 부르는 것은 토론이라는 단어의 질을 격하시키는 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설혹 단 한명이 다수에게 건전한 의견의 융단 폭격을 받더라도 그런 논쟁은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두호리님의 안티조선일보에 대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의 판단에는 잘못된 의견이라 대다수의 반대 의견자들의 반론이 집중 포화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다구리가 아니다. 윤간은 더욱 더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두호리님을 공격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두호리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이 어째서 다구리이며 윤간인가? 그럼 유영철은 범국민적으로 다구리 당하고 윤간 당한 것인가? (물론 두호리님이나 두호리님의 글이 유영철과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종종 치열하고 건전한 토론장에서 다구리 하지 말라고 하는 이를 보면, 자신의 의견 개진조차 할 능력이 없으니 괜한 토론자들보고 다구리하고 있다며 모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좋은 의견들을 보면서 기껏 생각해낸 것이 "다구리"라면 그 사람의 수준과 토론 능력은 뻔할 것이다. 성급한 판단으로 엄한 사람 욕보이는 내 수준은 알만하다고? 깔깔.

토론은 토의가 아니다. 긍정하는 자가 있다면 반대하는 자가 있다. 찬성하는 자가 한 명이 있고 반대하는 자가 9999999999명일 수도 있다. 집중 포격이 있는가하면 단지 반대 의견자가 아주 많은 치열한 토론인 경우도 있다. 각 토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채 걸핏하면 "냄비처럼 끓어올라서 다구리 치는 꼴"이라며 똥 뿌지직 싸고 튀지 말라. 적어도 의견을 전달하느라 상대방에게 침 몇 방울 튀기는 토론자들이 똥 싸고 튀는 그대보다 아름답다.


경력을 속이는 구직자

경력을 속이는 구직자(via 7828)도 참 문제이지만, 회사 상황을 속이는 구인자(회사)도 문제이다. 자본금 잠식이 이뤄진지 까마득한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자본금 10억원이라며 월급 끊길 일 없다는 회사는 참 많다. 귀에 솔솔 들어오는 업계 동향을 뻔히 아는데, 면접자가 면접 보러 회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어디서 돈 몇 억 금방 끌어오나보다. 골 때린다는 속어를 외치게 되는 상황이다.

구직도 해봤고, 구인을 담당해보며 느낀 점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는 점. 괜히 솔직히 이력서를 썼다가 그것이 경력 과장으로 오인 받아 괜히 손해 보느니 앞서 경력을 과장하자는 기특한(?) 한 발 앞서는 생각을 하는 이와 어차피 경력을 과장했을 터이니 "종이에 보이는 경력"에 맞는 대우는 해주지 않는 회사. 자사의 온라인 게임의 동접자 24만명이라고 발표하면 으레 3으로 나누어 실제 동접자 수는 8만명이라고 생각하는 온라인 게임 업계의 관례를 보는 듯하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제대로 과장 경력에 속아 프로젝트 실패하여 내 신뢰를 크게 잃은 뒤로는 이제 구직자를 믿을 수가 없다. 애초 그 회사의 과장된 투자 약속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만.

그 중간에서 손해 보는 이는 언제나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 물론, 솔직하고 진실할지라도 능력이 출중한 이는 손해 보는 거 같진 않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