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부상
03 Sep 2004아펐어요. 흑흑.
올림픽 마지막 날 태권도 결승에서 문대성 선수가 보여준 뒤 후려차기(뒤돌려차기, 혹은 회축이라고도 한다) KO승으로 무수히 쏟아지던 태권도에 대한 비난이 KO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태권도 경기 진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풋복싱(Foot-boxing)이라고 불리고는 하는데 그만큼 현란하고 빠른 발차기가 큰 특징이다. 특히 발을 차는 동작보다는 휘두르는 동작에 가깝기 때문에 위력도 어마 어마하다. 아래 동영상은 문대성 선수의 뒤후려차기의 KO승과 9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 태권도 경기에서 뒤차기(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뒤후려차기라고 하는 이도 있다) KO승을 다루고 있는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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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누구의 경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멋진 경기</center>
보다시피 큰 위력을 보이고 있다. 물론 턱을 맞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다리와 의식이 풀린 이유도 있지만, 설혹 턱이 아닌 안면을 맞더라도 코가 함몰되거나 입안이 다 터졌을 것이다.
태권도 발차기가 위험한 이유가 바로 위와 같다. 체중의 1/3에 가까운 무게의 다리를 크게 휘둘러친다. 선수의 몸무게 60kg라면 20kg에 1m 정도되는 통나무를 0.57초로 휘둘러친다고 생각하면 무난하다. 충격량 = 질량 x 속도니까 국가 대표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는 몇 백kg에서 1톤급 충격을 받는 것이다.
태권도 경기 진행에 대해 문제점을 비판하려는 듯 하다가 뜬금없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태권도 발차기의 위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태권도 발차기의 위력이 답답한 경기를 야기시키는 요인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점수 획득이 까다로운 점도 주요 요인이다.
혹자는 입식 타격인 K-1 무대에서의 선수들은 태권도 선수들처럼 답답하게 경기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반문한다. 그러나 K-1은 다리만 사용하지 않는다. 상대의 다리를 이용한 공격에 대한 방어만 신경을 쓰다가는 몇 백kg에 육박하는 충격량을 받을 수 있는 묵직한 주먹을 맞기 쉽다. 또한 태권도 경기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다리 공격 기술(로우킥(Low-kick))이 허용되기 때문에 방어가 쉽지 않다. 물론 태권도 경기에도 주먹 기술이 허용된다. 그러나 점수 획득이 가능한 부분을 가격하기가 까다로워 잘못 사용하다가는 반칙으로 처리될 수 있다. (분명한 건 K-1이 애들 눈을 망쳐놨다)
도망을 가는 것에 대한 공격적인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도 태권도 경기에 대한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이다. 레슬링의 경우 패시브를 주어 도망만 다니다가는 순식간에 몇 십점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태권도는 대부분의 경우 2회 경고를 통해 1점 감점 당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도망 다니며 반격만 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공격이고 그에 따라 회피나 방어가 용이한 점(물론 막아도 엄청 아프겠다만), 태권도 발차기의 한 방 위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회피와 방어만 하였을 때 받는 손해의 정도가 낮은점, 그리고 올림픽을 위해 4년을 준비해왔다는 부담감이 올림픽 정식 경기로써의 태권도의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선수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현재의 재미 없는 경기 진행은 이기는 경기 진행이고, 그것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걸. 당신이라면 은퇴하면 먹고살 일이 막막한 상황에서 20kg 이상의 통나무를 권투 선수의 주먹 빠르기만큼 빠르고 휘두르는 적을 상대로 멋지고 화끈하게 달려들 수 있겠는가? 점수 지켜서 연금과 포상금도 넉넉히 받고,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안전을 꾀할 수 있는데?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선수에게 강요하는 것은 잔인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흥미롭지 못한 경기 진행을 고수하면 언젠가는 올림픽 경기에서 제외될 수 있다. 솔직히 ITF(일명 북한 태권도 협회)에 의한 경기가 WTF(일명 남한 태권도 협회.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단체가 바로 WTF이다)에 의한 경기보다 훨씬 재밌다. WTF에서는, 아니 WTF에 가장 큰 입김을 줄 수 있는 대한 태권도 협회에서는 ITF를 분석하건 해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스포츠 태권도를 만들기를 강력히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