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e

Valentine. 내가 이 아저씨의 앨범을 산 때는 2001년이었다. 극심한 음악 슬럼프에 빠져있던 나는 아무런 목적 의식 없이 코엑스의 음반 매장을 찾았다. 슬럼프에서 나를 구출해줄 음악을 찾기 위해서.

슬럼프는 자기 자신이 만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잘못한 것이 없고 열심히 하는데도 이유 없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생각하느라 일이 잡히지 않으면 차라리 낫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미치고 폴짝 폴짝 전력 질주할 상황이면 슬럼프 우울증까지 겹치게 된다.

음악 슬럼프도 그러했다. 음악 잘 들으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음악이 듣기 싫어졌다. 아니, 듣고 싶은 음악의 멜로디가 귀에 맴도는데 도저히 찾지 못하였다.

무거운 귀를 이끌고 매장을 한참을 배회했다. 바네사메이의 새 앨범과 Bond 의 1집이 나와 매장을 시끄럽게 채웠다. 나는 괜히 이 앨범 저 앨범 만지다가 우연히 Valentine 의 4집인 4 United 를 쳐다봤다. 굉장히 촌스러워보이는 앨범 표지. 개인적으로 Dream Theater 의 앨범들 표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본 앨범의 표지는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 촌스러운 표지의 앨범이 나를 음악 슬럼프에서 구해줄줄이야.

Valentine 의 음악은 Queen 의 음악의 색을 많이 따른다. 차이점이라면 Queen 은 Valentine 에 비해 좀 더 Rock의 느낌이 들고, Valentine 은 Queen 에 비해 좀 더 Pop의 느낌이 든다. Queen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처음 들을 때부터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All Player인 그는 모든 악기 연주는 물론 보컬, 코러스까지 혼자서 해낸다. 개인적으로 그의 보컬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자신의 음악과 음악적 성향을 정확히 이해해서인지 음악에 딱 적절한 정도의 보컬 표현을 보여준다.

이미 일본 등 국내를 제외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꽤 많은 호응을 받았던 그가 국내에서는 대단히 생소한 이인 점이 조금은 아쉽다. 국내에서는 이런 느낌의 음악을 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든기에 더욱 그러하다. 모쪼록 이 글이나 피빛장미님의 글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Valentine 의 음악에 노출되기를 기대해본다.


마사이 전사, 레마솔라이

지난 토요일, 아니 일요일 새벽에 단숨에 읽은 이 책은 케냐를 구성하는 여러 부족 중 마사이 부족의 일원인 레마솔라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문체나 구성, 분량등 여러 면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힘든 상황을 이렇게 극복했다, 나는 대단하다' 식의 영웅전 읽는 듯한 느낌의 자서전류의 책을 나는 싫어한다. 특히 고승덕 변호사의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책이 그 절정이어서 다 읽고 났을 때 상대적 자괴감을 들게 만들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고생하면 못이룰 것은 없다는 것인데, 이 말은 죽도록 고생하며 노력하였는데도 실패하였거나 실패하고 있는 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람의 타고난 능력과 행운도 무시할 수 없음에도 그 책은 노력 그 자체만을 극도로 부각시켜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자신의 영웅 만들기를 탈피한 책이다. 홍정욱의 7막 7장과는 다른 느낌의 진솔함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자신을 수식하려는 지극히 계산적인 느낌의 다른 책과는 달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교훈(?)은 다른 책, 그러니까 '내 치즈를 누가 옮겼을까'와 '체인지 몬스터'의 그것이었다. 약해져가는 부족의 전통을 지켜가면서도 변화, 즉 현대 교육을 받아들여 자신을 만들어가는 레마솔라이.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며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 자신을 먼저 바꾸고 올바르게 나아가면 많은 이들이 결국 이에 따를 것이고 그것은 커다란 흐름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 레마솔라이, 그는 그런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덧쓰기 : 책 사진 출처는 알라딘. 알라딘,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