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Jan 2010
여러 사람을 만나며 배운 것 중 하나는 긍정성과 부정성이다.
상대방이 긍정주의자이면 나도 긍정성 원기와 열정을 충전받게 된다. 긍정주의자와 몇 시간을 이야기 나누어도 지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걸 듣는 게 즐겁다. 내가 입을 여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은 물론, 자리를 파한 뒤에도 설렘이 남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에 반해 부정주의자이면 충만했던 내 열정과 원기 마저도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고작 10분만 이야기를 나눠도 피로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의 말을 듣는 것도 고역이고 내가 말하는 것도 부담된다. 내 말 조차 부정 당할테니까. 자리를 파하고 나면 그 후유증 때문에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 구정물에 흠뻑 빠진 채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순 없지 않은가?
긍정주의는 낙관주의와 구분해야 한다. 낙관성은 비록 자신의 입에서 부정형 말이 나오지 않을 뿐, 듣는 상대에게 불안감을 일으키므로 오히려 상대방 머릿 속에 부정성을 심어준다. 결국 낙관주의자와 나누는 대화 과정은 부정주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지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딘지 모를 불안감에 계속 긴장하게 되므로 나중에 자리를 파한 뒤에 지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낙관주의자도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결과는 부정주의자와 비슷하다.
왜 그럴까? 낙관성이나 부정성은 “다름”보다는 “틀림”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는 낙관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리다고 여기고, 부정주의는 부정하기 위해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한다. 자신은 옳고 타인은 틀리기 때문에 틀린 자가 옳은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아질 수는 없기 때문에 서로를 맞춰 나아간다. 그런 동기화 과정과 행위는 적지 않은 힘을 소비한다. 낙관주의자와 부정주의자와 대화를 하면 힘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긍정주의자는 “다름”에 더 집중한다. 가령, 발생한 문제를 “틀려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달라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그 “다름”에 비추어 문제를 푼다. 문제를 푸는 데에 집중하면 되므로 힘도 덜 들고 효율도 높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얻은 이 교훈은 사실상 무척 사소하다. 진짜 교훈은 저런 생각에 비추어 나 자신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저 사람은 왜 저리 부정 성향이 강할까? 에 그치지 않고, 내 말과 생각을 다시 보게 된다. 편하게 내뱉은 내 말이 혹시 상대방의 힘을 희석시키거나 와해시키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사람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도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긍정주의자인가?
31 Dec 2009
시간 참 빠르다. 벌써 2010년 하루 전이라니. 혼란스럽고 유독 추웠던 2003년 11월에 블로그를 열어 우울한 마음을 남기고 벌써 만 6년을 보냈다. 매년 말마다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올해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매 순간엔 참 힘들거나 기쁘거나 슬펐는데 2009년 마지막날에 지난 364일을 되돌아보니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만다. 그런 마음으로 담담히 2009년을 결산해본다.
창업
함께 일했던 회사 동료인 유노님과 BKLove님이 작년 여름에 유저스토리랩을 창업했고, 리더(leader)는 자신의 시간 뿐 아니라 그가 이끄는 사람들의 시간도 책임지므로 몸값이 비싸다며 응원으로 가장한 압박을 글로 남겼다(압박을 느꼈는지 자신들을 응원하는 글인데도 그들은 저 글에 출석 확인을 하지 않았다 +_+). 그리고 나도 몸값 비싼 도시 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2000년에 첫 창업을 했었으니 내년 초에 회사를 세우면 딱 10년 만에 두 번째 창업을 하는 것이다. 난 아직 부족하지만 예전보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인연을 맺었기에 두 번째 창업에선 더 잘 해내리라 생각한다. 창업 준비 과정과 창업 이후 이야기는 “한날의 창업 이야기” 블로그에 계속 써나아갈 예정이다.
스마트폰
기술 추세에는 예민하지만 제품 구매와 경험은 다소 느린 편인데, 드디어 블랙베리 Bold 9000이라는 기기를 마련했다. 비록 잃어버리긴 했지만 아이팟 나노에 이어 블랙베리도 체스터님께 중고로 샀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아이폰 3GS를 사느냐, 내년에 나올 안드로이드폰을 사느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요금제를 강요 받지 않아도 되고 전지(battery)도 오래 가며, 내게 필요한 기능만 딱 적절히 제공하는 기기를 중고로 싸게 살 수 있어서 두 번 고민 안 하고 블랙베리를 샀다.
개통이 늦어져 며칠 밖에 못쓰긴 했는데 현재까지는 아주 만족스럽다. 좀 더 써본 뒤에 사용기를 글로 남겨야겠다.
책
2008년 말에 2009년 동안 책을 100권 읽겠다고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 해에 책 100권 읽는 목표를 달성하고, 후회한다.”는 글에 썼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적자면, 난 앞으로 이런 목표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책은 약 170권 가량 샀는데 이미 갖고 있던 책도 읽어서 새로 산 책은 반 정도 읽은 것 같다.
올해는 독자가 아닌 저자나 역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집필 아닌 집필을 했는데, 작년 여름에 한참 연재했던 “날로 먹는 Django 웹 프로그래밍” 강좌를 박응용님께서 책으로 인쇄해서 보내주셨다.

많이 부족한 강좌를 묶어주신 덕에 두고두고 기념할 수 있게 됐다.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집필을 준비했으나 더 준비를 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사기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유보했다.
대신 번역을 하나 하고 있다. 지금쯤이면 반 정도 번역을 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25% 정도 밖에 못했다. 정말 좋은 책이라서 얼른 번역을 마쳐서 소개하고 싶은데 아쉽다. 그래도 열심히 한다면 내년 2분기 중에는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읽은 책 중 좋았던 책 몇 권을 꼽아본다. 나열한 순서에 딱히 기준은 없다.
- 스티븐 코비 - 원칙 중심 리더십
- Head First Software Development
- 피터 드러커 - 미래 경영
- 게리 해멀 - 경영의 미래
- 제 3의 길
- 프레드 R. 버거 - 논리학이란 무엇인가?
- 로마인 이야기 (1~15권)
- 스티븐 핑커 - 언어본능
- 프로젝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가이 가와사키 - 당신의 기업을 시작하라
- 에리히 프롬 - 소유냐 존재냐
- 새로운 혁신의 시대
-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마치며
실은 올해에 안좋은 일이 무척 많았다. 그래도 견뎌내고 희망을 찾으며, 어딘가 있을 희망을 보며 나아갔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내년엔 더 큰 일을 벌였으니 무척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그래도 난 해낼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어려움과 위기도 견뎌내고 이겨내왔다. 절망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뚜벅뚜벅 내가 가야할 길, 우리가 가야할 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