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만든 지 만 5년.

2003년 초. 1997년부터 운영하던 개인 누리집을 닫고선 떠들지 못한 탓이다. 남들과 술 한 잔, 차 한 잔 기울이며 수다 떠는 성격이 아니니 개인 누리집에 구시렁 대고 했는데 그걸 닫아서 참 답답했던 탓이다. 블로그를 만든 것은 단지 그 탓이었다.

2003년 11월에 네이버 블로그에 글 하나 쓰며 블로그를 열었다. 내용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별 거 없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내 얘기를 읽어주고 댓글 남겨주는 이들은 별 것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블로그 덕을 많이 보았다. 수 년 동안 게임만 만들어오던 내가 인터넷 업계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인터넷에 작지만 뚜렷한 내 정체성을 자리잡게 해준 것도 블로그 덕이다. 다만, 여전히 아주 많은 사람들은 내 블로그에서 여자 가슴에 대한 정보를 찾으러 오는 점
아.
주.
조.
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예쁜 여자 가슴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이 즐겁지 않아 글을 뜸하게 쓸 때도 있었다. 옳지, 옳지, 예쁘다~ 칭찬 몇 번 받았더니 신난 똥강아지 마냥 손끝에 천근짜리 추를 단 것처럼 글을 썼던 탓이다. 속이 꽉차지 않고 단지 살만 찐 뚱뚱한 글이니,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이나 글을 등에 짊어지는 꼴이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나눴다. 이곳 블로그에 올릴 글 중 일부를 한날은 생각한다라는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똥꼬에 힘이라도 주어 쓴 글은 저짝으로 치워놓으니 여짝에는 낙서를 부담없이 올린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에 많은 애착이 간다. 이곳에 댓글 다시는 분들은 다른 내음이 풍기는 정을 느낀다. 안그래, 친구야? 하하.

귀한 시간 내어 기꺼이 별 볼 일 없는 블로그에 오시고, 글을 배달받아 보시는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려본다. 더욱 노력하여 구름에 숨은 채 하늘에 촉촉 박혀 있는 별이라도 따다 별 볼 일 때문에라도 이곳에 오시도록, 그리고 그 손걸음이 마땅히 즐거우시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그 고마움에 보답을 해본다. 그리고, 다음 5년 뒤에도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다.

지금까지 이곳에 오시고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


오기

쉬 마렵다. 삼십 분 됐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서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목이 돌아가는 의자를 디디고 서서 형광등 갈고 있는 이를 위해 아슬 아슬 의자를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변기가 막혀서도 아니요, 오줌발이 세서 오줌만 누면 변기가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쉬를 참으며 책을 읽고 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읽고 있는 이 책은 열 댓 장만 읽으면 다 읽는다. 화장실에 가 차디찬 바닥에 맨 발로 서서 몇 십 초 멍청한 자세로 오줌을 누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글자들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다. 집중력이 떨어져 방황했고, 집중력을 다시 올리려 했지만 힘에 겨워 골골대기를 몇 주. 인질처럼 질질 끌려오던 책은 벗들과 몸을 맞대고 제 쉴 곳에 들어가질 못하고 나와 함께 방황하고 있다. 마침내 빠져들어 이제 열 댓 장만 읽으면 끝나거늘, 마침맞게 오줌보는 탱탱해져 엎어져 책을 읽던 나를 일으켜 불편하게 몸을 펴게 했다.

책 다 읽고 화장실 가야 한다. 그럴 작정으로 삼십 분을 참으며 책을 읽으며 오기를 부리고 있다. 아니다. 괜한 오기가 아니다. 일주일만에 풀어주기로 하고 제 집에서 끌려나온 책이기에 그 약속을 다하려 애쓰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책은 착해서 우리말로 내게 말을 하니, 이십여 분만 더 참고 읽으면 될 터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오줌보는 쫄깃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