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게와 책방

오늘 아가씨와 광화문과 종로를 거닐다 교보문고에 갔다. 사람은 많았고 책도 많았다. 학기 초나 학년 말쯤 되어야 붐비는 동네 책가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책가게라는 느낌보다는 책이 곳곳에 쌓여있는 여가 공간으로 보였다. 책가게 크기가 갈수록 커진다는 소식은 책을 보고 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으니 부디 여기 와서 놀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라도 있으면 사가라는 추세를 잘 보여주는 것이리라.

나는 책을 대하고 살 수 있는 곳을 크게 세 곳으로 나눈다. 책가게, 인터넷 책가게, 그리고 책방.

인터넷 책가게야 워낙 다른 공간이니 그렇다 쳐도, 책가게와 책방을 구분하기는 좀 애매하다. 책가게건 책방이건 책을 접할 수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곳에서 편하고 부담없이 책을 보고 살 수 있는 지에 따른다.

정확히 근거를 댈 순 없지만, 한 다리 거쳐 들은 얘기가 하나 있다. 아는 사람의 매형 얘기였다. 지방에서 작은 책방을 하던 그 분은 인터넷 책가게 득세를 안타까워 하셨다. 여느 작은 책가게 주인들처럼 불안하기보다는 책방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 딱히 없는 지방 작은 마을에선 책가게가 곧 도서관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을 볼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샀다. 그런데 인터넷 책가게에서 책을 싸게 팔고 공짜로 배달까지 해주니 급한 사람이 아니면 동네 책가게를 이용하지 않기 시작했고, 도시를 중심으로 작은 책가게는 점차 사라졌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책이 보고 싶고, 어떤 책이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은 조금씩 불편을 겪기 시작했다.

주변 책가게가 하나 둘씩 문을 닫을 때쯤. 그 분은 돈을 더 들여 공간을 넓혔다. 책 놓는 공간을 넓히기 보다는 책 읽을 공간을 더 마련했다.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책을 읽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방으로 공간 쓰임새를 바꾼 것이다. 아니, 바꾼 것이 아니다. 원래 책방이었는데 더 책방 역할을 강화한 것이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책을 읽다 가기도 했고 사람을 만나 잠시 쉬었다 가기도 했다. 조금 남아있던 책가게 냄새를 완전히 걷어냈다.

무슨 무슨 다방이라는 애칭을 얻은 값비싼 커피 가게가 방방곳곳에 들어섰고 여전히 들어서고 있다. 책가게들은 점점 몸집이 커지고 있다. 큰 책방과 찻집은 두 공간을 잘 연결하여 책을 산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가끔 상술이 빤히 보이는 공간 구성으로 도저히 서거나 앉아서 책을 볼 수 없게한 손길을 느낄 수 있긴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책도 늘고 공간도 넓어졌지만 책방보다는 책가게로써 목적과 목표를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다. 책방은 줄고 책가게는 늘고.

아참. 그 분 책방은 어찌 되었는 지 궁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은 때가 2005년이었는데, 날로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외국계 커피가게에서 표방하는 대로 그 책방은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책 문화를 나누고 있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가정을 하나 먼저 내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여기 실존하지 않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존재하는 여성, 즉 가상인 여자 갑순이가 있다. 남자인 나는 이 여자와 컴퓨터 메신저로 평소에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얘기를 나누느라 둘 다 할 일에 지장을 받기 일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실제로 만나 차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갑순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 실은 메신저 되게 싫어해. 그래서 사무실에선 할 말 있으면 직접 가서 말을 하고, 메신저는 파일 주고 받을 때나 써”

갑순이 얼굴을 쳐다보니 혼란에 빠져 있다.

1. 나 메신저 되게 싫어한다. 하지만, 당신이기에 메신저를 켜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2. 나 메신저 되게 싫어하다. 그러니 이제 그만 당신과 얘기하고 싶다.
3. 나 메신저 되게 싫어한다. 이젠 메신저로 얘기 나누지 말고 이렇게 직접 당신을 만나 얘기하고 싶다.

대체 무슨 말이지? 뭐지? 뭘까???

그렇다면 난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한 것일까. 난 단지

“나 메신저 되게 싫어해. 그래도 메신저는 파일 주고 받을 때는 편해서 쓰긴 써”

라고 말을 하고픈 것일지 모른다.

왜 나와 갑순이는 소통에 이런 틈을 겪는걸까? 나는 싫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갑순이는 얘기 대상을 “자신”에게 맞췄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쓰임새”에 초점을 맞췄지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갑순이는 쓰임새를 “누군가”라는 대상에(정확히는 자기 자신) 맞췄다.

살짝 한 발자국 떨어져 상황을 보면 참 어리석게 보이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혹은 자기 자신을 조금만 뒤돌아보면 저렇게 개떡 같이 말하는 모습이나 엉뚱하게 받아들이고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선 이미 그 말에 대한 충분한 생각이 들어있고(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생각없이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리 저리 말을 잘라내어 줄여서 내 보낸 말이 저런 개떡 같은 말이다. 물론, 원래 말하려던 내용 대부분은 들어가있다. 하지만, 정리가 되질 않아 무엇에 초점을 맞춘 말인지 알 수 없어 갑순이는 저런 혼란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