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축구

우리나라 축구에는 크게 두 개의 축구단(team)이 있다. 프로 축구단과 국가 대표단.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 축구라던데(아마 2002년부터 일 듯),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 대표단 축구가 1위, 2위가 야구, 3위가 프로 축구단 축구이다. 박주영 선수가 어디 소속인지는 몰라도 국가 대표 경기에서 보여주는 경기력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조봉래(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상황도 유럽 '프로' 축구단과 비교하면 꽤 오래 버텼다고 생각한다. 이정도 성적으로 말이다. 물론 승률은 좋다. 하지만 이정도 성적은 여느 감독들도 해냈고, 유럽이나 남미와 경기를 벌이면 세계의 벽을 체감할 수 있었다. 차라리 가능성면에서는 차범근 전 감독이나 코엘류 전 감독 시절이 지금보다는 높아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가 대표단 축구라는 운동 경기(sports) 사랑은 좀 유별나다. 그 유별난 사랑은 강한 적극성을 띄고 있다. 피파 월드컵 본선 중 감독이 스트레스 받아 괴로워할까봐 친히 감독을 우리나라로 불러들여주었고, 어떤 감독에게는 오대영이라는 정감있는 별명을 붙여주어 수줍은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참 많은 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가 대표단 감독 사랑의 유별남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번 본프레레 감독 경질과 관련되어서는 제법 절제된 사랑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이라는 선례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엘류 감독이야 축구 협회에서 국민에 대한 과잉 충성(삽질)이 낳은 경질이었다면, 본프레레 감독은 신비로운 축구 협회의 인내와 적정 수를 차지하고 있는 본프레레 지지자(아니, 정확히는 좀 더 지켜보자는 사람들) 덕분에 오래 버텼다.

나는 본프레레 감독이 대표단을 맡을 때부터 반대했다. 사람을 학력이나 경력같은 배경(background)로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내가 본프레레 감독에 대해 신뢰를 가질만한 건덕지도 볼 수 없었고, 그가 지휘를 맡은 대표단은 도대체 색이나 향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어록이야 언론 매체를 통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친절한 기자씨들이 각색을 해줄 수 있어 관심도 안가졌지만, 그의 색깔없고 목표(vision)를 도무지 볼 수 없는 지휘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보는 눈이 없고 맡는 코가 없어도 그렇지, 어쩜 이렇게 눈에 보이는 흐름과 코에 느껴지는 향이 전혀 없을까! 하수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고수의 수라서 그런건가! orz

언제부터인가 나는 국가 대표단의 경기를 보지 않았다. 프로 축구단의 경기도 시간 없다며 보지 않는데, 프로 축구단의 경기보다 월등히 훨씬 재미 없는 국가 대표단의 경기를 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색과 향기의 충돌. 우리나라 프로축구단의 경기도 지난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층 더 발전해서 이제는 색과 향의 향연인 유럽 축구 경기 못지 않다. 하지만, 국가 대표단의 경기는 상대의 색과 향에 짓눌려 질식할 것처럼 허우적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내가 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가 대표단 사랑과 국가 대표단 감독 사랑을 좀 자제해야 하긴 하다. 어쩌면 이번 본프레레 감독 일도 유별난 사랑에서 빚어진 비극일지도 모른다. 또한, 본프레레 경질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월드컵이라는 행사 는 십중팔구 비극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국가 대표단의 발전과 우리나라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같은 모습은 안된다. 우리나라처럼 국가 대표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애들 따라할까 무서우니까.


맛이 있는 무엇

맛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 맛이 좋은지 나쁜지는 다분히 개인 취향 차이니 평가할 수 없다. 다만, 맛이 없는 것들은 평가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것은 맛조차 없다고.

맛을 낸다는 것은 '기획을 했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데, 세상에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많은 걸 보면 여전히 기획을 하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는 '무엇'들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맛을 가지고 있는 게임 중 내가 좋아하는 게임은 슈퍼 마리오와 젤다, 스타크래프트, Nethack 등 몇 가지이다. 취향 차이를 떠나서 이 게임들은 맛을 가지고 있다. 그 맛을 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매우 많다. 이 맛에 감동하여 (나처럼) 이 맛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저 맛을 내기 위해 저 게임을 만든 사람들과 같은 고민을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분명 저 맛을 지향하며 만든 흔적이 있는데, 어떤 맛인지 전혀 알 수 없거나 아예 맛이 없는 게임들이 나오는 경우가 퍽 많다. 퍽! 퍽!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워드프레스, 블로그밈, 조그, 태터툴즈, MT 등과 같은 설치형 블로그를 비롯해서 네이버 블로그, 이글루스, 온블로그같은 가입형 블로그 중에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몇 개 안된다. 지금 별 생각 없이 꼽아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맛을 내지 않더라도 독특한 맛을 내는 네이버 블로그, 과즙 음료같은 이글루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맛을 가진 워드프레스, 그리고 점차 뚜렷한 맛을 만들어가서 내 눈길을 자꾸만 끌어당기는 태터툴즈 정도만 생각난다.

블로그밈 개발자와 친분이 있어 간혹 메신저를 통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블로그밈에 이런 저런 주문을 할 때 주로 워드프레스를 기준으로 해서 떠들어대는데, 얼마 전에 처음으로 태터툴즈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고 얘기를 했다. 태터툴즈의 성능이나 효율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기 어렵지만, 맛을 내기 위한 기능 배치와 적절한 성능 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개발자가 만든 블로그 도구 중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밈 개발자 역시 이런 개발관을 가지고 있으나 기획 관점에서는 태터툴즈 개발자와 비교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안타깝거나 한심해서가 아니라 친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태터툴즈를 약간 우회해서 칭찬했다. 아직 블로그밈은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긴 하다만,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가는 태터툴즈를 보니 괜히 채근을 해봤다.


새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어떤 '맛'을 낼까이다. 맛이 있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맛이 대중의 입맛이 맞을지 안맞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참 당연한 고민인데 새삼 어렵고 괴로운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젤다랑 마리오나 해야겠다. 맛을 상상하려면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