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붐비는 전철 안입니다. 20대로 보이는 당신은 앉아서 화장을 고치고 있군요. 앙 다문 입, 치켜 든 턱으로 인해 게슴츠레 뜬 눈. 속눈썹을 세우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 탓에 당신의 눈빛은 손거울을 뚫을 것만 같습니다. 화장실이 아닌 지하철 안에서 화장을 고치는 모습에서 공공 예절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욕구는 무죄라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어린 아이가 어미 손을 잡고 지하철에 탔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분명 아이보다 크지만 다른 어른들에 비해 왜소했습니다. 지하철이 덜컹이자 아이와 어미 구분 없이 반동에 휩쓸립니다. 균형을 잃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용케 쓰러지지 않으며 아이를 보호했고, 아이는 어미에 의지한채 꼬옥 안겨있습니다.
이 애틋한 광경에 서있는 제가 안타까웠습니다. 앉아있었다면 자리를 양보했을텐데 말입니다. 같은 생각을 하던 당신 옆의 아가씨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합니다.

이쯤되면 끝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전히 당신은 오른쪽 속눈썹을 세우고 있습니다. 고개 숙인 성기를 움켜쥐고 발기시키려 온갖 공을 세우는 이처럼 당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아니 속눈썹을 세우는 집중력은 차라리 안타까웠습니다.

꼬부랑 할머리가 꼬부랑 고개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할머니가" 동요의 주인공인듯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높은 담장같은 젊은 사람들 속에서 힘겹게 파고 들어 마침내 제 옆에, 그러니까 당신 앞에 서게 되셨습니다.
지하철 덜컹 하나에 할머님도 덜컹합니다. 지켜보는 사람 마음도 덜컹합니다. 당신 옆에 앉은 지팡이 든 할아버지께서 안타까워하십니다. 방금 전 당신 옆에 앉은 어린 아이와 그 어미가 일어서려 합니다. 그리고 애처롭게 짧은 티를 내며 서지 않았던 당신의 속눈썹이 일어섭니다. 하지만 당신은 왼쪽 속눈썹을 다듬기 시작합니다.
보다 못한 할아버지께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여 몸을 일으키십니다.

바쁘고 붐비는 출근 시간의 지하철 2호선.
당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느 여인과 다를 바 없을 지 모릅니다. 저는 당신이 속눈썹을 세워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구별할 수 없지만,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미의 오점을 보완하여 당신은 만족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끝끝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젊은 당신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당신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여자 화장실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

몇 년 전 일이다. 나우누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용 게시판 중 "열린광장"(go plaza)이란 곳이 있다. 이름값 하느라고 항상 사람들의 토론으로 후끈 후끈하다.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제의 분야는 정치이며 조선 일보, 사회 현상, 남녀 얘기, 종교 얘기(주로 개신교)도 정치만큼이나 자주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토론이 있는데 여자 화장실 얘기였다. 2001년 7월 22일자 동아일보 기사인 [이슈추적] 남녀차별이냐 구별이냐가 시발점이었는데, 이 기사에 여성의 화장실 이용 시간이 남성의 1.6배이므로 공공건물에 설치된 여성 화장실의 갯수를 남성 화장실의 1.6배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려 있었다. 꽤 많은 남성 이용자들이 "폐미년"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며 반대를 했었기에 나를 비롯한 몇 몇의 찬성/공감파들은 이렇다할 호응을 받지 못했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가족이나 여자 친구와 함께 외출을 하였는데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뒤에 나오는 어머니나 여동생/누님, 혹은 여자 친구로 인해 밖에서 기다리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화장실 이용 목적 중 소변을 누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여성은 아무리 서둘러도 남성보다 일을 빨리 마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 신체 구조상 소변을 보는데 필요한 동작이 많고</p>
  • 신체 구조상 소변을 보기 위한 공간이 많으며
  • 이로 인해 동일한 화장실 공간일지라도 여성 화장실에는 소변을 볼 수 있는 변기 수가 부족
  • 화장실 문화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차이

때문이다.

물론 거울보며 화장 고치거나 팔짱 끼고 함께 들어간 친구와 잡담을 하는 여성의 화장실 문화가 화장실 혼잡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밖은 길게 줄을 섰으며 붐비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거나 친구와 잡담을 하기는 쉽지 않다. 즉 화장실 혼잡을 야기하는 주 요인은 변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백화점들은 1층에는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거나 구석에 소수 설치하고, 여성의 왕래가 많으며 여성 상품이 많은 2층과 3층에는 여성 화장실만 있기 때문에, 남성들은 힘들게 4층 이상을 올라가야 화장실 이용할 수 있다며 이것 역시 차별이라는 남성들도 간혹 보인다. 공공 시절인 공원에 남성 화장실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여유 있게 물건 구경하다가 화장실 생각나면 남성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걸 차별이라 하는지 참 유치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성 화장실의 변기 부족은 분명한 차별이다. 여성의 신체 구조상 변기 설치에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분명 인지하고 있었을텐데, 화장실 설계할 때 여성 화장실의 공간을 남성 화장실과 비슷하게 할당하여 결과적으로 변기 수 부족으로 여성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건 명백히 차별이다. 감각있는 건물 공간 기획자가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소비자 심리 분석가(쇼핑 심리 분석가도 있더만)의 활발한 연구 활동 덕인지 새로 지어진 백화점들은 여성 화장실 수자체도 많을 뿐더러 화장실 공간도 좀 더 넓게 하지만, 아직 대다수의 건물들은 물론 공공 건물이나 시설에 있는 화장실 주변에서 긴 줄을 선 여성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수 많은 건물들의 화장실을 하루 아침에 뜯어고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돈이 든다. 그 돈 어디서 생기는가. 세금이다. 세금 많이 걷기 위해 흡연이나 술 섭취, 혹은 가까운 거리는 자가용 이용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처럼 서서 소변보라고 여성용 소변 보조기를 강요할 순 없다. 그건 여성에게 보조기 구매라는 경제적 손해와 편한 자세 포기를(여성도 서서 소변보는게 편하려나?) 강요하는 또 다른 남녀차별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여성 화장실 확장 필요성의 공감대 형성이다. 아직 이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 물론 백화점과 같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건물들은 자발적으로 여성 화장실 개선과 확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정부 역시 성별 영향 평가를 통해 정책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아직 미진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여성부) 여성 화장실을 개선하고 확장해야 하는 이유와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 화장실 확장 필요성을 퍼뜨려야 한다. 그리하여 보다 광범위하게 여성 화장실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해한다면 보다 빨리, 그리고 누구나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에서 여성 화장실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