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장바구니와 첫 화면

책 장바구니

인터넷 서점인 A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손에 쥐어준 적립금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뺏어가는 것이 괘씸해서이다. 그런데 이건 되게 사소한 이유여서 이유계(系)의 깍두기에도 못미친다. 왜냐하면 어차피 회수 기간 안에 적립금을 다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여러모로 평이 좋은 A사 대신 Y사를 쓰는 이유에 대한 내 대답(괘씸한 적립금 정책)은 실은 본질이 아니다. 실은 Y사를 떠나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장바구니에 있다.

Y사의 인터넷 서점에 있는 내 책 장바구니에 현재 담아 쌓아놓은 책은 88권(약 150만원), 나중에 사려고 따로 빼놓은 책은 375권(약 760만원)이다. 장바구니는 내 취향이나 선호도, 구매 의지 등 소비자가 갖는 온갖 복잡미묘한 체계와 원리가 녹아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품절이나 절판되어 더이상 판매되지 않는 책이더라도 장바구니에서 빼지 않고 그대로 냅둔다. 장바구니에 들어가있는 흔적 자체가 나 스스로를 되집어가는 빵조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한테 장바구니는 사생활이나 개인 정보 측면에서 조금 특이한 공간이다. 누가 참견하는 건 싫지만 들여다보는 건 괜찮을 것 같다. 즉, 입력(insert)/수정(update)은 사양하지만 보는(view) 건 괜찮다. 아, 물론 선택해서 몇몇 책은 안 보이게 가릴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허영심을 지킬 수 있다.

첫 화면

어쨌든, 난 다른 사람이 내 장바구니를 들여다봐도 괜찮다. 그러니 Y사는

제발 좀

내 장바구니와 구매 이력을 조금이라도 분석해서

전혀 내 관심을 끌지 못하는 화장품이나 책을 첫 화면에 내게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웹 브라우저가 버벅대서 첫화면 가기 싫다.


2010년 결산

벌써 2010년을 결산한다.

1. 창업

2010년에 있었던 큰 일 중 하나는 창업, 정확히는 법인 설립이다. 지난 9월 1일자로 (주)클라우드기프트를 설립했다. 아이폰용 앱 개발이나 HTML 5, 모바일 웹 등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현재는 우리의 방향을 향해 첫 번째 걸음을 뗐다. 그 첫 걸음은 현재 알파 버전을 향해 가고 있으며, 2011년을 아주 재미나게 이끌 것이다.

예전 같으면 “우와! 이런 일도 있었어. 글로 남겨야지”하던 일도 이제는 덤덤하게 받고 겪고 보낸다. 회색빛 사람이 되어서 그런 건 아니고, 이젠 좋은 일이든 안좋은 일이든 감정으로 휩쓸리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감정과 감성은 오히려 더 촉촉해졌다.

2. 책

작년엔 책 1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면, 올해엔 책과 관련된 어떠한 목표나 계획도 세우지 말자고 다짐했다. 읽은 책을 세보니 32권을 읽었는데, 과연 계획이나 목표가 없으니 거리낌 없이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년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야겠다.

올해 읽은 책 중 몇 권을 꼽아본다.

  • 경영이란 무엇인가 (조안 마그레타)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 논어 (공자)
  • 군중심리 (귀스타브 르 봉)

3. 영어

몇 달 동안 미국 시트콤인 프렌즈로 영어 듣기 훈련을 했는데 실패했다. 하루 평균 2~3시간씩 듣고 따라 읽었지만, 귀가 열리는 대신 잔머리가 더 발달하게 됐다. 덕분에...

눈치력 +3

눈치가 늘었다.

눈치로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능력치를 높이고 싶다면 자막 없이 다른나랏말로 가득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될 것 같다.

아이폰에 영영 사전을 넣고 그때 그때 모르는 낱말을 찾아서 뜻과 사용 예제 문장을 외우는 노력은 제법 도움이 됐다. 독해력이 느니 듣기 실력도 조금 는 것 같다.

4. 클라우드 컴퓨팅

몇 년 전부터 구글 닥스 등 인터넷 기반으로 정보나 자료를 관리했지만, 그래도 주요 관리 공간은 내 노트북이었다. 그런데 올해 9월에 노트북 하드 디스크가 망가졌다. 많은 사진과 자료, 작업물과 야한 동영상이 유실됐다. 다행히 최신 자료는 인터넷 곳곳에 있어서 유실하지 않았지만, 지난 4년을 도둑 맞은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날려먹어도 씩씩하게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자료만 노트북에 남겨두고, 날아가면 나를 우울하게 만들만한 자료는 곳곳에 퍼뜨려 놓았다. 인터넷 기반으로 관리할 수 없는 자료 관리 프로그램은 되도록이면 쓰지 않고 있다. Devonthink 와 Things가 빠른 시일 안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으면 과감히 손을 뗄 예정이다.

5.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의도한 건 아닌데, 1년 단위로 더 마음이 쏠리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달라진다. 2007~2008년엔 미투데이, 2008~2009년엔 트위터, 2009~2010년엔 페이스북에서 많이 놀았다. 근데 요 몇 달 전부터는 각 서비스를 쓰는 마음가짐이 변했다. 각 서비스마다 맺어진 사람 관계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6. 술과 커피

작년부터 슬슬 술맛을 알아가는 것 같았는데 올해엔 사실상 술을 끊다시피 했다. 맛은 있는데 몸이 받아내질 못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식탐이 없어서 별 불편함 없이 술에 손을 안 대고 있다. 이젠 소주 세 잔도 버겁다.

커피는 많이 늘었는데, 몸이 힘들 때엔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아주 단 커피를 마시거나 카페라떼처럼 배 부른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커피에 다른 향이 섞이는 걸 싫어해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셨었기에 많이 변한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단 커피는 부담스러워서 자양강장제처럼 뇌에 부하를 걸 때나 마신다. 하지만 카페라떼는 좋아하게 됐는데, 에스프레소 샷을 하나 더 넣어서 마시는 게 좋다.

뭔가에 잘 중독되지 않게끔 무의식 중에 자기관리하는데, 커피는 중독이라 부를만큼 애음했다. 안 마시면 머리도 아팠고.

근데 커피도 중독된 것 같진 않다. 지난 11월~12월을 정신없이 보내면서 커피를 별로 못 마셨는데, 한 며칠은 커피 생각이 나곤 했지만 그 며칠을 넘기니 원래 커피를 안 즐겼던 사람으로 돌아간 것처럼 편안했다. 대신 다른 차(tea)를 즐겼다. 커피에 중독됐다기 보다는 차(tea), 혹은 물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7. 말투

2009년부터 말을 풀어서, 그리고 다소 돌려 말하려고 했고 2010년엔 거의 입에 붙었다. 고백하자면, 변명성 말을 앞에 붙이면서 정말 내가 할 말을 머리 속에서 만드는 시간을 버는 잔머리다.

지금은 이를 다시 떼어내고, 다소 건조하더라도 할 말만 간결히 하도록 말투를 바꾸려 애쓰고 있다. 시간을 버는 꼼수를 없애는 것이라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1년엔 말수가 많이 줄 것 같다.

8. 마치며

마음과 달리 생각없이 1년을 보낸 것 같다. 생각하는 척만 퍽 많이 했다. 똥품 그만 잡고 깊이 생각하며 2011년을 달려야겠다.

그리고.

지난 1년 함께 해주신 분 모두 대단히 고맙습니다. (뜬금없는 마무리...)